문경의 장인들/상주

공갈못 (공검지)

맛깔 2012. 3. 5. 23:17

 

 

 

"엄마 여기가 공갈못이에요?”

“그래 공갈못이다.”

“생각보다 적어 보이네요.”

“지금이야 공갈못의 역할이 줄어들어 그 크기가 작아졌지만 옛날에는 상당히 컸단다.”

“설마요?”

“기록에 나와 있어. 상주가 고향으로 순조와 고종 때 사람 고성겸이란 분이 있었는데 ‘儉湖觀魚(검호관어: 공검호에서 물고기를 보다)’란 시에서 ‘무수한 어선이 금수(錦繡:비단으로 수 놓다) 가운데 떴네’라고 하였으니 많은 어선이 고기를 잡으려면 호수가 컸겠지.”

“아 그렇네요”

 

“그 뿐이 아니야.”

옆에서 아들과 엄마가 얘기하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던 아빠가 한 마디를 거든다.

“정희량도 시에서 ‘남국의 산수론 최고인데 / 뉘 이 못과 자웅을 다투랴’고 하였고 채소권은 ‘십리 평평한 호수 거울같이 맑네’라고 했어.”

아빠가 말을 잇는다.

“퇴계 이황 선생 알지? 퇴계 선생은 ‘동우비하’라는 시에서 ‘들으니 항주(중국)에도 십리 연밭 있다던데 / 비단 구름같은 이곳과는 어떠한지’라고 했어. 항주와 공갈못의 크기가 비슷하였으니 비교했겠지. 권문해 라는 사람은 시에서‘십리 너른 호수에 옥으로 다리를 놓아 / 썰매로 달리니 말발굽처럼 교만하네’라고 읊었으니 크기가 컸던 것이 맞는 것 같아.

 

 

 

 

“아니 여보” “아빠”“언제 이렇게 공부하셨어요?

아들과 엄마가 동시에 외친다.

“아들이 그 유명한 공갈못을 답사하러 간다는데 아빠가 공부를 해야지. 아빠 어릴 때 공갈못 문제가 시험에 나왔는데 틀렸어. 그래서 공갈못을 잘 기억해. 여보 당신은 시험문제에 정답을 맞혔어요?”

“그럼요. 얘기해 볼게요. 시험 문제는 이것이었지. 우리나라 오래된 삼대 저수지가 아닌 것은 1. 상주함창 공갈못 2. 김제 벽골제 3. 제천 의림지 4. 밀양 수산제”

“엄마 제가 답을 얘기할게요. 밀양 수산제 맞죠? 저 이 답 맞았어요.”

“우리 아들 똑똑하네”

 

 

“이렇게 시로 그 크기를 말했지만 그 크기가 다가오지 않겠지. 그러면 공갈못의 크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줄게. ‘공검지는 고려 명종때 사록 최정빈이 옛터를 따라서 쌓았는데 둑의 길이가 8백 60보이고 둘레가 1만 6천 6백 47척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고 했어. 1보 0.5미터와 한 척 51.41미터(여조 때의 포백척)으로 환산하니 못둑의 길이는 430미터요 못의 둘레는 8.56킬로미터가 되지.”

“엄마가 덧 붙여 주마. ‘볶은 콩 한 되를 한개 씩 먹으며 공갈못을 돌아도 콩이 모자란다’고 했을 정도니 공갈못을 돌려면 사람 배가 커야 되겠지.”

‘하하’ 세 가족이 모두 소리내 웃었다.

 

 

“그런데 아빠 못 이름도 희한하네요. ‘공갈못’이 뭐에요?

“그렇구나. 아빠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공갈못 이름에 대한 유래를 보니 몇 가지가 있더구나. ‘공갈못’은 ‘공검지’라고도 하는데 에밀레 종이라는 별칭이 붙은 봉덕사신덕대종처럼 슬픈 전설이 있더구나. 제방을 쌓을 때 물이 너무 많아 일하는 사람이 많이 필요했는데 어느 집에서 ‘공검’이란 아이를 내 놓아 아이를 묻었다는구나. 그래서 공갈못이라 불린다는 얘기가 있는데 홍귀달이란 사람은 이 전설이 아니라도 했어.”

“그렇죠. 아니겠죠. 아빠. 그렇게 끔찍한 전설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니겠지. 또 다른 하나는 신채호 선생은 고링가야에서 공갈이란 이름이 나왔을 것이라고 했어. 또 다른 현대의 학자들은 (권태을, 김기탁, 김철수) ‘돋우는 것’을 상주 김천 방언로 ‘공구고’로 발음하고 여기에 흙을 다져 넣는 ‘공글리는’작업으로 완성된 못이란 뜻으로 ‘공글못’이 ‘공갈못’이라고 됐다고도 하지.”

 

“이야 우리 아빠 짱이다. 아빠 존경스러워요.”

“어흠 이쯤이야 보통이지.”

어깨를 으쓱이는 아빠와 아빠를 쳐다보는 아들과 아내의 눈길에는 존경스러움이 담겨있다.

 

 

 

“여보 이제 아들에게 왜 공갈못이 필요한지 얘기를 해줘야죠.”

“사실은 이 질문이 가장 먼저 나왔어야 되는데. 질문순서가 틀렸네. 아들아 공갈못이 왜 있다고 생각하니?”

“그야 물고기도 잡고 물놀이도 하라고 만든 것 아니에요?”

“그야 요새 사람들 얘기다.”

“요즘에는 먹을 것이 풍부했지만 옛날에는 식량이 많이 부족했어. 무엇보다도 곡식이 중요했는데 항상 부족했지. 벼나 곡물을 재배하는데 물이 필요했어. 평소에는 물을 가두었다가 농사지을 때 물을 제때 공급해주기 위해 공갈못을 축조했던 거야”

 

 

“그러면 공갈못은 사람의 필요에 만들어진 것이군요. 언제 만들어 진 거죠?”

“에 그게 말이다. 아쉽게도 정확한 기록이 없더구나. 다만 삼한시대 내지 고녕가야국 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추정하지. 왜냐하면 공갈못이 있는 함창은 고령가야의 고도야. 그래서 고령가야 사람들이 농사짓기 위해 공갈못을 축조했다고 생각해. 거의 2천녕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야.”

“히야 2천년 역사라. 그런데 아빠 공갈못 둘레에 비해 둑 길이가 짧은데 왜 그렇죠?”

“날카로운 질문이네. 옛 선조들이 지형을 잘 이용한 거지. 슬기로우셨다고나 할까? 그렇게 짧은 구간만 둑을 쌓았는데도 큰 저수지가 생겼으니까. 새만금을 생각해봐. 현대의 발달된 토목기술로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비가 들었는지.”

 

 

 

“엄마가 가끔 흥얼거리는게 공갈못 노래에요?”

“그래. 공갈못 때문에 아빠와 결혼하게 되었기에 공갈못 노래를 부르면 아빠와 연애할 때가 생각나.”

“엄마 다시 얘기해 주세요.”

“엄마는 젊었을 때 사람들이 상당히 예쁘다고 했어. 당연히 인기도 아주 많았지. 그런데 노총각 아빠가 나타난 거야. 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대. 그래서 매일 나를 쫓아다니는 거야. 요즘으로 치면 스토커라고 할 정도였어.”

“아빠 정말이에요?”

아빠는 흐뭇한 미소만 짓고 대답을 안 하신다. 아마 옛 일을 생각하니 부끄러운 것이 틀림없으신 게다.

 

 

 

“그래서 아빠 때문에 너무 지치고 힘들어 하니 ‘아빠가 앞으로 다시는 따라다니지 않을테니 소원하나만 들어달라’고 했어”

“무슨 소원이에요? 엄나 뜸들이지 말고 얘기하세요”

“여보 당신이 얘기하세요”

옆에서 미소만 짓고 있는 아빠가 활짝 웃으면 말한다.

 

“내 친구가 말이다. 그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자주 싸웠대. 우연히 공갈못에 얽힌 전설을 듣고 그 여자와 공갈못에 가 ‘못돌이’를 하고서는 여자와 결혼을 했대”

“네? ‘못돌이’요?”

“공갈못 주위를 도는 거지. 탑을 돌면서 기도하는 탑돌이를 생각하면 돼”

 

“전설이 궁금해요”

“엄마에게 공갈못 노래를 불러 달래렴. 그것을 듣고 얘기해 줄게”

노래를 잘하시는 엄마가 맑고 구성진 목소리로 공갈못 노래를 부른다.

 

 

‘상주함창 공갈못에 / 연밥따는 저처녀야

연발줄밥 내따주께 / 이내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 연밥따기 늦어가오

 

상주함창 공갈못에 / 연밥따는 저큰아가

연밥줄밥 내따줌세 / 백년언약 맺어다오

백년언약 어렵잖소 / 연밥따기 늦어가오‘

 

 

“노래가 좀 슬프네요.”

“슬픈 노래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지. 동네에 연지라는 고운 처자가 있었는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대. 시집 갈 나이는 됐는데 시집가면 어머니를 봉양할 사람이 없어 노처녀로 늙어갈 형편이었지. 이웃 동네 삼돌이란 총각이 연지를 좋아해 그와 결혼하려고 이 노래를 불렀어. 삼돌이도 가난해 어머니를 모시고 살 수 없었지.”

“두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네요”

“행복하게 살았으면 이런 슬픈 얘기가 전해 오지도 않겠지. 동네 김첨지가 연지를 탐내 후실로 들이려고 했지. 삼돌이가 그것을 알고는 연지에게 말했대. ‘내 돈을 벌어 올테니 그때까지 기다려주시오. 그러면 연지님과 어머니를 모시고 잘 살테니’

 

“그래서 돌아 왔나요?”

“아니야 마을을 떠난 삼돌이의 종적이 묘연했어.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도 삼돌이로부터 소식이 없었어. 김첨지는 연지에게 첩이 돼 달라고 계속 졸랐어. 하는 수 없이 연지가 김첨지의 소실로 들어갔는데 친정 어머니를 봉양해 준다던 김첨지가 연지 친정 어머니를 돌보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연지도 그만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는데 죽기 전에 공갈못 가를 돌면서 공갈못 노래를 부르더래. 아마 삼돌이를 그리워하면서 불렀겠지”

“그 뒤 부자가 된 삼돌이가 돌아 왔는데 꿈에 그리던 연지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도 넋을 잃고 공갈못 가를 돌면서 공갈못 노래 부르기를 한 달 쯤 했을까. 삼돌이도 죽었어.”

 

 

“그 뒤 마을 사람들이 삼돌이와 연지의 혼을 달래는 재를 지내고부터는 공갈못가를 돌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은 행복하게 인연이 맺어 진다는 소문이 돌았어. 그래서 아빠도 엄마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 연지와 삼돌이에게 소원을 빌었어”

“연지 낭자와 삼돌이 님 감사합니다. 두 분 덕분에 엄마 아빠가 결혼했고 제가 태어났습니다.”

“자 이제 가자꾸나. 떠나 저 고운 연꽃을 보면서 문장사가(文章四家)로 알려졌던 눌제 박상(1474~1530)이 공갈못에 대해 쓴 시를 읽어주마.

호숫물 망망한데 호수해는 맑고

갈대꽃 서로비친데 여뀌꽃 밝네

작은 배로 늦게야 유리굴에 드니

천상 구름 속을 쾌마같이 달리네. (함창8경 중 검호추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