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삼십 년 된 압력솥과 어머니

맛깔 2013. 4. 21. 09:00

‘칙칙’ 압력추가 돈다. 여든 어머니가 삽 십 년도 넘은 압력솥에 콩, 현미, 쌀, 조, 보리 등을 넣고 밥을 지으신다.

모처럼 집에 온 타향살이 아들에게 밥을 먹이려고 훈훈한 정이 서린 솥에 밥을 안치신다 어머니는 다 큰 자식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려 하고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아들은 어머니 나이 드신 것을 모른 체 한다.  

 

 

어머니에게 가면 살이 찐다. 어머니는 살 빼라 하시면서도 제 입맛에 맞는 것을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아들이 오면

 자갈치 시장 가셔서 장을 봐 온다. 생선회도 사와 상에 올려 주시고 생선도 굽고 멍게, 오징어 초밥도 만들어 주신다.

사 십년 훨씬 전에도 집에서 초밥을 먹었는데 분가 후에는 집에서 한 번도 초밥을 먹은 적이 없다. 어머니는 자식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해 주셨고 아내는 바쁘다는 이유로 제 자식 좋아하는 것만 챙기나 보다.

 

 

집에 처음 압력솥이 들어 온 시기는 내가 군에 있을 때 같다. 군 입대 전까지는 연탄으로 밥을 해 먹었는데 휴가 오니까

 가스레인지가 있었으니까. 가스를 처음 켤 때 폭발할 것 같은 느낌에 매우 긴장했기 때문에 기억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압력솥은 여동생이 고등학교 때 받은 세뱃돈으로 어머니에게 선물한 이만 삼 천 원 짜리란다. 어머니 부탁으로

손잡이와 패킹을 갈려고 서비스 센터에 간 적이 있다. 오래 전 일이다. 도로변 2층인가 3층인가에 서비스 센터라는

 간판이 있었는데 찾아보니 건물이 번듯하지는 않았다. 대신 장인 느낌이 나는 분이 믿음직하게 설명해 주던 기억이 있다.

그 뒤 몇 번이나 부품을 가셨을까?

 

 

‘밥심으로 산다.’고 하듯 압력솥으로 지은 밥을 먹으면 힘이 솟았다. 압력솥에서 갓 나온 쫀득하고 찰진 밥은 반찬 없이도

 목에 술술 넘어갔다.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압력솥으로 갖은 음식을 하셨다. 인삼 달이고, 약물도 고우고 갈비찜 하고

감자도 삶고 고구마 찌고, 마른 나물과 무청 삶기 등등,

 

어머니의 압력솥 고백을 들었다. 탈 없는 압력솥이 지겨워 전기 압력솥으로 바꾸셨는데 전기압력솥이 생각보다

불편하더란다. 편할 것 같은데 아니 그랬다고, 밥맛도 훨씬 못하고.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네 집에서 쓰는 전기압력솥이

그것이야.” 분가한 아들이 제때 챙겨먹지 못할 것 같아 주신 줄 알았는데. 참 오래도 썼다. “탈난 적이 있었는데

네가 서비스센터에 가져가 수리해 주지 않았냐.”고 하신다. 패킹과 손잡이 교환한 거요. 그때가 언제 적 이야긴데.

 

 

무심한 아들은 때로 압력솥을 보고 낡았다는 생각에 바꿔주려고 얘기 드렸더니 “이 압력솥이 제일 좋더라.”며 한사코

거절하신다. 자식 부담을 덜어 주려고 그러시나 아니면 손에 익어 그러시나? 이럴 때는 어머니의 속내를 모르겠다.

 부모는 아들 마음을 단박에 읽을 텐데. 손에 익어 그럴 것이라 생각하련다.

 

부지런한 어머니가 반질반질 닦아 윤이 나는 압력솥은 삼십 년 이상을 물불과 씨름해 추도 부상을 입었지만 역전의

 노장다운 풍모를 지닌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압력솥을 이렇게 오래 쓰면 제조회사는 뭐 먹고 사나?

 

또 다시 압력추가 돌며 구수한 냄새가 난다. 어머니는 미처 잠이 덜 깬 나를 부르시리라 “밥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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