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내 생일

맛깔 2003. 7. 5. 19:48

부모님이 오셨다. 내일은 아내 생일이다. 부모님은 며느리의 생일상을 차려 주기 위해 온다고 하면 며느리가 미안해할까

이른 단풍도 보고 싶고 손녀들도 눈에 아른거려 오신다고 했다. 항상 며느리 생일에는 꼬깃꼬깃 모아 두신 돈을 부치면서

국을 끓여 먹으라고 하신 시 어른이었다. 어머니가 메고 오신 배낭이 무거웠다. 배낭에는 돼지고기 양념한 것,

미역, 미역국에 쓸 쇠고기, 제가 명절에 선물한 토종꿀, 고등어와 조기 그리고 김치가 담겨 있었다. 당신은 허리와 다리가

아파 걷는데 불편을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주려고 바리바리 싸 오셨다. 서울에 있는 남동생과 여동생도 왔다.

 

저녁에는 어머니께서 아내가 음식상을 차리는 것을 도와주라고 하셨다. 여동생을 불렀다. 나는 밥을 할 테니 너는 어머니와 고기를 구워라.

 

밥을 먹고 여동생보고 설거지 할 그릇을 싱크대로 갖다 달라고 하였다. 여동생은 오빠가 아내를 챙기는 것을 보니 보기가 좋다고 한다.

여동생은 나의 강아지론 강의를 또 들어야 만 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주인이 예뻐해야 남들도 예쁜 줄 한다. 내가 데리고 있는 개를

오가며 한 대씩 차 봐라. 남들도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찬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위대한 점, 하나를 얘기해 줄까.

 

얼마 전 미국이 북한과 미군유해송환 협상을 벌인 적이 있지. 한국 전쟁때 죽은 미군의 유골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야.

우리 생각에는 죽은 지 50년이 지나 뼈밖에 남지 않은 유골을 송환하여 앨링턴 국립묘지에 이장하면 뭐 큰 대수냐고 하기 쉽지.

首邱初心(수구초심)이라고 동물들도 죽을 때는 고향을 그리워한다는데 사람들은 오죽 하랴.

 

미국과 이스라엘은 자국민을 엄청 귀하게 여기는 거야. 내 국민들아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워다오. 싸워서 이겨 영웅으로 귀환하면

그 보다 더한 영광이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신들이 죽으면 당신의 유해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고국으로 모셔와 남은 사람들의

존경과 애도 속에 국립묘지에 모시겠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야. 모사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첩보원의 한 사람인 엘리 코헨(Elie Cohen)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이스라엘은 이집트 태생인 유대인 엘리 코헨이 시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돼 스파이 혐의로 처형당하자

 많은 돈을 들여 사체를 송환하였어. 내 가족을 내가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내 가족을 돌보리오. 그러니 내가 언니를 귀하게 여기더라도

 질투는 하지 말아라. 대신 너나 우리 딸들이 시집가면 남편들이 너와 딸들을 귀하게 여기도록 내가 모범을 보여주마.

 

나는 평소에도 아내를 도우려고 하지만 명절이나 행사에 가족이 모일 때면 꼭 아내의 일을 덜어 주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그렇게 크게 있을 리 있겠나. 고작해야 설거지 정도이다. 인터넷을 떠도는 전국의 며느리님을 위한 시에는 명절을 맞는 며느리들의

고충을 얘기하였다. 오랜만에 모이는 자리에는 남자들은 모두 앉아서 먹고 떠들고 노는데 며느리들은 죄다 일만 하니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명절 스트레스니 명절 증후군이 생겨 며느리들은 명절이 두렵다고 하였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여자들에게는 고통을 준다면

가정의 평화가 이루어지겠는가. 아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남편들이 사는 방식을 조금 바꾸어야 한다.

국가가 잘되기 위해서는 구태여 민주화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칠 필요가 있겠는가? 나라의 기초가 되는 가정에서 독재적 삶이 존재하는데

 나라가 잘 굴러 갈 리가 없다.

 

금속에는 탄력한계성이 있다. 금속에 어느 정도의 힘을 가하다 그 힘을 제거하면 금속이 제자리로 돌아 와 그 형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탄력한계성을 넘는 힘을 가하면 그 금속은 부러지거나 휘어지게 된다.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며느리들은 명절에는 인내한계성을

넘는 노동을 강요받는다고 한다. 아니 그렇게 느끼는가 보다. 우리 어머니들은 그 보다 더 한 일을 하셔도 시부모와 남편 그리고 자식이

만족하면 즐거워 하셨는데 오늘날의 며느리들은 나의 삶이 중요하다고 외친다. 그래서인지 모든 남편들에게 어머니의 품은 언제나 포근하다.

내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찾아가 기댈 수 있는 고향 같은 것이리라. 반면 아내의 품은 달콤한 유혹이상의 것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난

그게 못 마땅해도 어쩌겠는가. 시대를 거슬러 살수 없으니 시대의 조류에 맞춰 살아가야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식물이든 동물이든 산 짐승이든 생명이 없는 것이든 탄력한계성을 벗어나는 외압이 가해지면 좋을 게 없다. 가정과 교육이 필요한 것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계를 넘지 않도록 항상 보살피고 지도해야만 우리의 꿈나무들이 바르게 자라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명절에는 꼭 설거지를 한다. 올 추석에는 처갓집에 가서 설거지를 하고 비빔밥을 준비하였더니 처남댁이 아내를 아주 부러워하였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명절에 설거지를 하는 나를 보고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다. 집에서만 도와주면 되지 이렇게 티를 내야 만 되겠냐. 그런 마음을

가졌으리라. 우리 어머니가 누군가. 아내도 좋다고 하는 시어머니 아닌가. 항상 전화를 하시면 나에게 아내를 도와주라고 당부하시던 어머니지만

가족들이 모이는데 장남이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 게 좀 이상해 보였나 보다. 이제는 내가 설거지를 하는 것을 아주 당연해 하시니

오늘도 저녁상을 물리면서 아들더러 빨리 설거지를 하라신다.

 

아침은 간단히 먹었다. 아침을 먹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나는 자칭 2002년 월드컵 대표 사진사다. 장인이 물려주신 카메라와 며칠 전에 산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가족들과 함께 아파트 입구에 모였다. 자 벤치에 앉아 예쁜 표정을 지으세요. 아버지 혼자 앉으세요. 어머니 아버지 곁에서

다정한 표정을 지어 보세요. 옛날 사람들은 표정관리를 잘 하였는지 요즘 젊은이들처럼 자연스런 표정이 나오지 않는다. 부부가 남들 같군.

저러면서도 일흔이 될 때까지 다정하게 살 수 있다니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에는 아내의 생일상을 차려 주기 위해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내가 주방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아내는 보조였다. 미역국을 데우고 조기를 구웠다.

어머니는 무와 콩나물로 나물을 만들었다. 여동생은 심부름을 했다. 아내는 무를 썰고 숟가락을 준비하였는데 본인의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음식을 하는 것을 보면 좀 무안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밥 전문가다. , 흑미, 차조, 보리쌀과 콩을 넣고 무쇠 솥에 밥을 하였다.

 그리고 진밥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압력밥솥에 물을 조금 더 넣고 밥을 했다.

 

문득 어머니께서 하신 얘기가 생각난다. “얘야 내가 마흔 살 전에는 생일 밥을 제대로 얻어 먹지 못했다. 옛날 사람들은 남편보다 생일이 먼저인

아내들에게 생일을 잘 안해 주었어. 옛날 시집살이 모습을 들어 볼래.”

 

고추당추 맵다해도 / 시집보다 매울손가 / 시어머니 앙살방귀 / 시아버지 호령방귀 / 시누방귀 표독방귀 / 서방방귀 단방귀 /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는 잘 지내셨는데. 할머니는 자리에 누워 계실 때 우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죽을 몸 거짓말 안한다.

나는 너희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좋았다." 할머니가 돌아 가셨을 때 어머니가 슬피 울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정말 슬퍼하셨다.

그러다 탈진하기까지 하셨다. 한 집에서 오래도록 같이 사셨기 때문일까.

어머니가 그러셨다. “할머니가 아프더라도 자리보전을 하였을 때는 집이 꽉 찬 것 같았는데

할머니가 안 계시니 집이 텅 빈 것 같구나.

 

아내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곁에서 과일을 깎았다. 여동생과 설거지를 마치니 동생들이 서울로 갈 시간이 되었다.

부모님도 집으로 가시고 나니 문득 마음이 쓸쓸해 졌다. 부모님이 계시고 동생들이 활기차게 떠들면 집이 꽉 찬 느낌인데.

부모님은 두 분만 사시니 외롭지 않을까. 항상 걱정이 된다. 내가 빨리 자리를 잡고 두 분을 모셔야 될 텐데.

 

아내여,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부모님, 며느리의 생일상을 차려 주기 위해 귀한 발걸음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귀한 아내여, 까마귀는 새끼가 자라면 어미 새가 먹이를 주던 은혜를 잊지 않고 늙은 어미새를 봉양한다고 합니다.

 反哺之孝(반포지효)라고 한다지요. 우리가 미물보다 못할 리가 있습니까. 시부모님이 늙으셔서 힘이 없으면 당신을 챙겨주던

 시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마세요.

 

後記(후기) : 이 글을 아내에게 보여 주니 피식 웃었다. 아마 과대포장이 되었나 보다. 그래도 어떠랴. 아내가 즐거워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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