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믿음으로 얻은 평화 지상낙원 따로없다.

맛깔 2003. 1. 1. 19:55

쌍둥이 아빠 하누구는 애처가야.”든지 하모모는 항상 싱글벙글하지만 재미없게 사는 거 아냐? 집과 병원만 왔다 갔다 하니까 말이야.”

라는 것은 제가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첫째 것은 맞지만 둘째 것은 아니고 진짜로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공자님의 말씀을 빌어 알려 드리겠습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論語 學而編

 

저는 퇴근하면 인터넷에 접속하여 메일을 확인하고 필요한 자료를 찾습니다. 어떤 날은 포토샵, 액세스를 배우고 잠시 짬을 내어 긁적긁적

 잡문을 씁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라는 아내의 성화를 뒤로 하고 거실에 앉아 신문, , 잡지 등을 봅니다.

요즘 들어 저의 관심을 끄는 주제는 문화와 인간입니다. 읽다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아내는 제 등을 마주하고 비스듬히 앉아 책을 봅니다.

아이들은 저쪽에서 상을 펴 놓고 바다따라 신화따라칠칠단의 비밀을 읽고 있습니다.

거실에서 환하게 불을 밝혀 놓고 모여 있으니 난방비가 절약되고 전기세도 아낄 수가 있어 참 좋군요.

 

뉴스를 핑계 삼아 TV를 켜고 보다가 연이어 재미있는 프로가 있으면 TV시청으로 그날을 마감합니다. 만약 두뇌에 흥미와 여유를 주는

TV프로가 있으면 읽어야 할 게 쌓이는 거죠. 우 스트레스... 조선조 영조대왕께서 그러셨다죠.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먼데 석양이 저무는구나.”

 서양의 누구 얘깁니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고 할 일은 많고... 제대로 배우려고 하니 정말 시간이 없네요.

 

제가 몇 해 부터 공부했지만 기술이 늘지 않아 요즘 신경을 써 공부하는 것이 있습니다. 카메라입니다. 아는 분들에게 사진을 찍어 주니

 저를 프로라고 치켜세웁니다만 사실 사진은 배워도 어렵군요. 병원과 봉사대 홍보 기사를 신문에 기고할 때 필요한 사진을 찍다 보니

 제가 생각해도 사진 촬영술이 많이 늘었습니다. 사진에 관심있는 분들은 사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시죠. 26 년 전에 작고하신 장인께서

물려주신 40년 된 수동 펜탁스입니다. 맛이든 멋이든 정성이 깃들어야지 겉만 미끈하다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가족사진이 필요하신 분은

 연락하세요. 필름 값과 현상료에 단란한 가족을 담아 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애처가로 보이는 까닭을 얘기할 차례가 되었군요. 결혼 전 아내를 줄기차게 따라 다녔던 것은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

(None but the brave deserves the fair.)’John Dryden (1631-1700, 영 시인, 극작가)의 싯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혼 후 처음에는 달콤한 신혼이 언제까지 계속되리라 생각되었지만 사소한 다툼이 쌓이고 술로 인해 여늬 부부들처럼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어찌된 연유인지 장모님께서 사위를 아주 좋아하십니다. ‘당신의 부족한 딸을 여왕처럼 대해 준다면서요..’

아내가 이 태전 한 얘기가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쌍둥이 딸을 혼자 키울 때 아빠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목욕시키기 위해 물을 데우다가 9시가 되면 혼자서 목욕을 시켰답니다. 그러다 부엌에 있는 물을 가지러 간 새

 아이가 울면 아내도 같이 울면서요. 거의 몇 년을 그렇게 했다니까요 참 무던한 아내지요. 어찌 그런 얘기를 진작 하지 않았는지요.

아님 해도 제가 태무심했는지 모르는 일이지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간이 큰 남자가 저구나 하는 것을 알고는 음매 기가 좀 죽었습니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아내가 임신 8, 9개월쯤 되었을 때, 친구들과 1,2차를 하고 거의 12시가 돼, 친구들을 끌고 집으로 갔습니다.

아내는 무거운 몸으로 술상을 차렸습니다. 친구와 저는 얘기를 하다 제가 그만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짓궂은 친구들은 아내와 함께 새벽 5시까지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때 막 잠에서 깨어난 제가 피곤한 아내더러 해장국을 끓여 달라고 하여 친구들과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 같이

출근을 했습니다. 참 용감하죠.

 

제가 서울에 있을 때 충무로의 극동빌딩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사무실 맞은편에는 남산 안기부가 있고 바로 앞에 호텔이 있어

모모씨가 안기부직원의 부름을 받고 모 호텔에서 기다렸다고 하는, 바로 그 호텔이었습니다. 호텔 옆의 골목길에 이라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그 곳은 한 십 여 평 되나요. 커튼으로 칸막이를 한 방이 두 서 너 개 되었지만 손님이 많지 않아 우리 주당들에게는 참 좋은 장소였습니다.

 

카페를 지키던 사람은 20대 후반의 마담이나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생들이고 참 예뻤습니다. 근데 왜 손님이 없었을까하고 생각하니

아마 안기부 부근에서 기분 좋게 취할 수는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자들이란 때로 술에 취해 호기도 부려야 하는데 술을

마셔도 마냥 취하려면 부담스러웠겠지요. 그 때가 노통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술 좋아하는 동기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피곤하면 그 집에서 자고 새벽 5, 6시 경에 부스스 깨어 택시타고 집에 갔습니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당신 신랑 잘 마시다 왔으니 걱정 말고 해장국을 내오라 하여 먹고 회사로 갔습니다. 아내가 바가지 긁지 않았느냐고요

궁금하시면 다음을 잘 보세요.

 

보통 때는 초저녁에 집으로 기세 좋게 전화를 해, 동기들과 술을 마시니 걱정 말고 저녁을 먹고 혼자 자라고 하고 술을 마십니다.

, 예정에 없던 술잔치가 그 집에서 벌어지면 술 마시다 밤 11시나 12시경에 제가 취한 목소리로 미안한데 중요한 모임

(항상 중요한 모임이었죠.)이라 빠질 수 없으니 끝나면 갈께하고 전화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전화도 않고 마시다 곯아 떨어져 자다 깨보니 좁은 소파에 동기 3~4명이 널 부러져 있는데 제가 너무 취해

도저히 집에 전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담더러, 20대 후반쯤 되었는데 아주 예뻤죠, 집에 못 간다고 전화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잤는데 그 다음 날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날 믿는 거죠. 전화 받을 당시 아내는 자고 있었는데

그 시각에 묘령의 아가씨로부터 전화가 오니 사고가 났나 보다 하고 놀랐다는 겁니다. 신랑을 못 믿어 불안 한 게 아니고요.

벽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것이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주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그것도 서울에서는 말이 없었는데 아는 사람이 외박하여

집에 들어가서 죽네 사네 하는 싸움이 일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그제서야 아내가 얘기를 하더군요. 그러니 어찌 제가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리하여 혈기방장한 하모씨는 아내에게 꽉 잡힌 애처가가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지상의 남편들이여 평소 아내에게 믿음을 주세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라고. 수신제가를 잘 하면 나의 집은 성곽이 되고

 가정은 지상의 천국 아니겠습니까? (2001년 가을)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맛깔은 통화 중  (0) 2012.09.24
사진 공모전 대상 수상  (0) 2011.10.11
아내 생일  (0) 2003.07.05
황혼  (0) 2003.01.01
내 한 때는  (0) 2003.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