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갑장산(1)

맛깔 2011. 10. 17. 06:00

으뜸은 ‘갑’이다. 그래서 갑을병정으로 시작되는 천간의 첫머리에 갑이 자리를 차지한다. 상주의 명산은 갑장산으로부터 시작된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에 우뚝 솟아 있는 갑장산(805.7m)은 이 일대에서 속리산(1,058m) 다음으로 꼽히는 높이와 산세를 지닌 명산이다. 태백산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이 소백산을 솟구치고, 죽령과 이화령을 지나 속리산을 일으킨 다음, 다시 추풍령으로 건너가기 직전에 남동쪽으로 가지를 뻗어 상주벌 아래, 남녘에 일궈 놓은 산이 바로 갑장산이다.

 

 

갑장산의 유래는 아름다움이 으뜸이요(甲) 사장(四長)을 이룬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사장의 네 가지는 갑장사, 남장사, 북장사, 승장사로 이중 승장사는 폐허가 됐다. 갑장산은 고려 충렬왕이 승장사에 잠깐 머무르며 영남의 으뜸이라고 명명했다는 설이 있는 상주의 안산으로 상산 삼악의 하나인 연악(淵岳)이라고 한다. 연악의 이름은 구룡연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구룡연은 갑장사 뒤 사거리에서 50m정도 내려가면 우측에 있는데 천제와 기우제를 지내던 신성지이다.

 

 

용은 아무 곳에나 살지 않는다. 용이 있다함은 신령스러운 곳이다. 가뭄으로 고통 받을 때 나옹 화상을 떠올리며 구룡연에서 기우제를 가지면 필시 효험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믿음은 신앙을 낳고 신앙은 행복을 가져왔을 것이다.

 

 

갑장산은 연악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상주에는 3악산이 있으니 남장사가 있는 노악산, 용흥사와 갑장사의 연악산 그리고 천봉산으로 알려진 석악산이 있다.

 

 

명산에 명찰이 없을 수 없다. 용흥사와 갑장사가 그 명찰의 대열에 있다. 명찰이 있는데 고승이 없을쏘냐?

 

고려 때 고승 나옹화상은 상주 사람이라고 이곳 상주 사람들은 믿는다. 일설에는 다른 고장 출신이라고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부질없다. 미혹한 중생은 고승과 인연 한 자락이라도 나누면 좋은 일이라 여기고 가까이 모시고 싶음이다. 깨달은 사람이 터를 가릴 리 없다. 삼라만상이 부처님의 품안이니 어딘들 고향이 아닐 수 없다.

 

 

사자는 약한 새끼를 키우지 않는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껴 중국으로 유학 간 화상의 스승 또한 선기가 하늘을 찌른 지공화상이었다. 나옹 화상은 지공화상 밑에서 공부를 한 뒤 법맥을 이어받고 고매한 선지식을 찾아 중국 여러 곳을 다녔다. 공민왕 7년(1358), 나옹 화상은 원나라로 건너 간지 10년 만에 고려로 돌아왔다. 제자는 귀국 인사를 위해 스승을 찾아뵙고 하직인사를 올리며 선가의 문답과도 같은 질문을 주고 받았다.

 

 

“제자가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이 옳겠습니까?”

“귀국하여 삼산양수지간에 거주하면 불법이 스스로 크게 일어나리라.”

삼산양수지간이라 하면 세 산과 두 강 사이를 말함이니 나옹화상은 삼산양수지간에 있는 회암사의 중창불사를 마무리하였다. 나옹의 제자 또한 고승의 반열이니 이름 하여 무학대사라 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말없이 살라하네 푸르른 저 산들은

티없이 살라하네 더높은 저 하늘은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나옹 선사-

 

목숨을 걸고 공부하여 대오각성한 선사의 선시라기에는 너무 부드럽다. 글과 말은 품성을 따라 가는 법. 화상의 품성은 봄날 볕처럼 따사로웠을 것이다. 나옹 화상은 시에 능하여 나옹화상가송이란 시집을 남겼다. 에둘러 왔다. 이제 갑장산과 나옹 화상의 인연을 얘기할 때다.

 

나옹 화상이 창건한 갑장사는 조그만 절이지만 유서가 깊어 신도들은 사월 초파일 밤에 연등을 들고 산돌이를 한다. 산을 도는 연등행렬도 장관이고 그 산에서 내려다보는 상주 시내의 불빛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