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홍류동의 은둔 유학자, 고운 최치원과 농산정(4)

맛깔 2011. 10. 11. 07:30

외로웠다. 최치원 선생은. 그래서 그의 자는 외로운 구름(孤雲) 이었다. '해인사 구름을 벗 삼는다.' 하여 해운(海雲)이라고도 했다.

 

 

고운은 12세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18세 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를 한 출중한 인재였다. 황소의 난 때 읽다 놀란 황소가 침상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토황소격문’을 지은 명 문장가였다. 

 

선생의 나이 28세 때 청운의 꿈을 품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허나 그를 맞이한 것은 신라 말 문란한 국정과 뛰어 넘을 수 없는 골품제의 한계였다. 헌강왕은 공의 재주를 아껴 곁에 두자 하나 세 약한 재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헌강왕 급사 후 고운 선생은 자청하여 대산군(전북 태인), 천령군(경남 함양), 부성군(충남 서산)의 태수로 떠돌았다.

 

 

신라의 국운은 기울어 왕조의 마지막으로 치달았다.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지방에 미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고운 선생은 필생의 노력으로 신라 사회 개혁안을 담은 시무십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렸다. 여왕은 화답하여 고운 선생을 그가 속한 육두품 중, 최고 관직인 아찬에 봉했다. 아까울 손. 재능 있는 관리였지만 기득권 진골 세력의 발호를 뛰어 넘을 수 없었다.

 

 

포부 있는 사람은 능력이 쓰이지 못할 때 모반하거나 은둔하는 법. 하늘이 낸 고운 선생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가족과 함께 가야산으로 들어갔다. 시름을 달래는 한편으로 주유천하하였으니 그의 발자취는 부산 해운대와 청량사, 홍류동 계곡, 남산제일봉, 고운암 등에 남아 있다.

 

 

고운 선생의 행적은 글로 알 수 있어 몇 편의 시로 그의 소회를 살펴보자.

 

가을바람 맞아 그렇게 괴로이 읊었건만

내 뜻 알아주는 사람 이 세상에 적구나

창밖에 비 흩뿌리는 이 한밤중

등불을 앞에 두고 마음은 만 리 저쪽

 

 

선생의 뜻 펴기가 어렵다고 했으니 입산 전, 신라의 녹을 먹던 때였을 것 같다. 마음은 입산을 결정한 듯 하다. 마침내 웅지를 펼 기회를 얻지 못하고 가야산으로 들어가면서 시 한 수를 남긴다. 마음 비우고 떠나는 것이 아니고 뜻을 펼치지 못한 것에 대한 재사의 포한이 남아 있다.

 

스님아 청산이 좋다 말하지 마오

좋다면서 어찌 다시 산을 나오나

뒷날 내 종적 한 번 두고 보겠나

청산에 한 번 들면 다시 안 돌아가리

 

가야산에 살면서 세속의 시비를 듣지 않고자 농산정 앞 바위에 마음가짐을 새김질 하였으니 이른 바 둔세시다. 이 농산정이 홍류 계곡에서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미친 물 바위 치며 산을 울리어

척에서 하는 말도 분간키 어려워라

행여나 세상 시비 귀에 들릴세라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감쌌네

 

크게 쓰이지 못한 고운 선생의 재능을 안타까워 한 후세 선비가 농산정을 찾아 벙어리 ‘농’으로 바꿔 시를 지었다.

 

최치원께서 언제 이 산에 들어 왔던가?

흰 구름과 황학이 아득히 어우러진 때 였도다.

이미 흐르는 물로서 세상의 때를 씻었으니

만 겹 산으로 다시 귀 막을 필요는 없으리라.

 

홍류 맑은 물로 씻어 명경이 되었으니 시시비비가 두려워 겹겹산으로 병풍 칠 필요가 없으리라는 후학의 충고다.

 

그 뒤 고운 선생의 발자취는 찾을 수 없다. 선현이 거짓을 말할 리 없다. 하늘이 낸 사람, 고운 선생은 운수납자처럼 여러 곳을 다니며 공부하고 우화등선하여 가야산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고운 선생을 봐도 알 수 있으니 하늘은 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시련을 준다. 맹자 ‘고자장’에 있는 글이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은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그 이유는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조용헌)

 

작은 일을 버려 큰 일을 이룬 선생이 부럽다. 생사 경개 뛰어 넘는 도인이라는데 그깟 세속 왕과 골품제 귀족들이 눈에 들어 올 리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