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의 장인들/장인들

경북 명인 명장, 도자의 새 역사를 쓴 고려천목요, 이구원 전통 기능장 (5-3)

맛깔 2011. 6. 30. 08:01

 

 

글 하춘도 / 사진 강석환

월간중앙 2011년 7월

 

선조들의 빛난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려고 하지만 계승은 커녕 단절된 것도 많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짓던 목조 건축술이 그러하며 봉덕사 신종의 종고리 제작술도 그러하다. 요즘 사람들은 옛 시대의 작품들을 제대로 재현하기도 숨이 벅차다. 그래서 옛 전통의 비법을 발견하면 온 나라가 떠들썩해진다.

 

 

고려천목요 이구원 기능장은 옛 전통을 복원했음은 물론 현대 기술을 활용하여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도자금박’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선생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노동부로부터 2010년에 대한민국 전통 (도자금박) 기능 전승자로 선정됐다. 그는 고려흑자를 재현하고 이 흑자에 전통적 상감기법이 아닌 구워진 흑자에 음각하여 금박을 입힌 것이다. 이 기법을 활용하면 유리, 도자기 등에도 문양을 새기고 금박을 입힐 수 있다.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듯 도자금박의 결정체는 고려흑자요 유리 등이지만 명품의 밑바탕에는 그가 할 수 있는 32가지 기능과 40 년의 세월이 오롯이 담아 있다. 도자기를 만들던 부친을 따르고자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미술을 배워 지금까지 도요와 관련된 일을 해 왔으니 햇수로는 40여 년이요 그의 몸에 살아 숨 쉬는 것은 전서, 전각, 서각, 문패, 용접, 현판, 소지, 추상, 구상, 유기, 조소, 조각, 회화, 진공정밀주조, 도장 등의 기능이다.

 

 

대구사범을 나와 교사 생활을 하던 선친 이성규 옹은 몸이 아파 한때 교직을 그만두었다. 그 여파로 학교 잘 다니던 기능장은 취미 삼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파던 도장이 업이 돼 버렸다. 야간중학교를 다니면서 도장으로 번 돈을 학비와 생활비에 쓰기도 했다.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돈벌이는 그치지 않아 이것 저것 많은 일을 했는데 철공소와 자전거 도금 일과 청동의 일종인 포금 일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재능은 있어 고등학교 때 홍대, 중앙대 등에서 주최한 미술 대회에서 여러 번 큰 상을 타 미래 기능장이 될 여지를 보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하자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요업장의 권유에 따라 요업사에 취업하여 어린 기능장의 자질을 마음껏 보여줬다.

 

그의 재능이 뻗어나가지 못함을 안타까워 한 주위 사람들의 강권으로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고 대학에서도 역시 공부 외에 여러 일을 하였는데 진공정밀주조란 기능도 몸에 익혔다. 대학 졸업 후 원형제작과 이를 수출하는 회사의 개발실장으로 들어 가 한 삼년 열심히 회사의 발전과 개인의 실력 증진에 많은 공을 세우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게 됐다.

 

 

학교 강의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였는데 벌이가 아주 좋은 빔 용접을 하다가 사단이 났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몸을 크게 다친 것이다. 수술과 2년의 휴식에도 휴유증은 몸에 남아 아직도 걸음이 불편하다.

 

성실하게 학업과 작업을 함께 하던 것을 본 옛 거래처 사람이 일본 갤러리에 소개해 일본에서 전시회를 연 적이 있었다. 이때 일본 모 백화점의 다도부장이 미래의 기능장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 주었다. “자네가 전시한 흑자는 일본과 중국에도 흔해. 한국에는 뛰어난 고유의 흑자가 있으니 그것을 연구해 보게”라고. 그 은인은 무광의 고려흑자를 말했던 것이다.

 

 

언젠가는 최고의 고려흑자를 빚어 보겠노라고 작심한 것이 몸 다친 것을 계기로 실행하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알음으로 고려흑자 파편이 발견 된 곳을 중심으로 반경 15~20키로미터 지역을 훑어 나갔다. 파편을 분석하고 유약 성분을 찾아 나가기를 15년. 마침내 완벽한 고려흑자를 재현할 수 있었다.  

 

무광이니 서민적이며 철 성분으로 차를 중화시키며 사용할수록 색깔이 진해지며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이구원 기능장의 고려흑자에 탄성을 지르는 차인들이 늘어갔다.

 

 

그러나 선생은 재현은 답보라는 생각에 시대에 걸 맞는 명품을 만들기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였다.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깨야 되는데 문제는 무엇을 깨느냐는 것이다. 생각을 깨면 깨닫는 사람이 되고 작품을 깨면 새로운 작품이 나온다. 그는 작품을 깨고 못한다는 생각을 깨자고 했다.

  

 

의외로 쉽게 답이 나왔다. 고려흑자를 깨 명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는데 살면서 몸에 익힌 32가지의 기능을 활용하면 될 것 같았다. 몸에 기술을 익히기 어려웠지 이론은 알았으니 진척은 빨랐다. 손수 제작한 기계로 카보란덤 입자(다이아몬드 파우더)를 고려흑자에 표면에 쏘았다. 여기에는 전기 테이프와 날카로운 커팅 기술과 도장파고 전각 새기고 그림 그리고 글씨 쓰던 모든 기능이 총 동원되었다.

 

 

마침내 도자기가 발명된 이래 새로운 명품이 탄생했다. 연장이나 기구를 갖다 대면 깨지거나 아니면 흠집조차 나지 않던 단단한 고려흑자에 원하는 문양을 새겨 금박을 입힐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후세 사람들은 도자기의 역사를 이구원 기능전승자의 전 시대와 후 시대로 나눌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