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금주 선언문

맛깔 2011. 7. 7. 20:20

 



나는 오늘부터 술을 끊을 것을 나의 양심과 명예를 걸고 부모님과 친우 그리고 이웃에게 고하노라. 지금 이 시각부터 어느 누가,

어떤 이유로 나에게 술을 권하더라도 나는 그 잔을 매정하게 뿌리칠 것을 엄숙히 세계만방에 선언하노라.


 대저 나 역시 술의 좋은 점을 모르는 바 아니도다. 우리처럼 유교문화에 젖어 사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저 스스로 드러내기를 어려워하지 않느냐? 이 같은 경우에 한 잔의 술은 흉금을 터놓는데 아주 좋은 역할을 함을 익히 알고 있노라. 한 잔을 권유하며 스스로를 소개하고 둘째 잔에 음주한 자의 자라 온 환경을 알고 셋째 잔에 이 내 마음속에 묻은 배포를 얘기할 수 있음은 삼척동자라도 알고 있음이다. 


고향을 떠나 살아온 지 여러 해 동안 열심히 일하여 먹고 살만한 집을 장만하고 가족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면 행복한 줄 알고 있도다. 허지만 首邱初心(수구초심)이라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방법이 없다. 또한 부모님과 형제 그리고 어릴 적에 헤어진 친구들이 보고 싶음은 인지상정이다. 이때 한 잔술을 마시며 추억을 달래면 그 서글픈 맘이 사라짐을 타향살이 10여년의 내가 잘 알고 있음이다.


겨울철에 산에 가 본 적이 있느냐. 평지에도 추운 한겨울에 산에 가면 그 추위가 살을 에는 듯 하다. 쌩쌩 부는 바람에 귀가 떨어 져 나가는 듯 하고 고드름을 스친 바람이 코와 입을 때려 몸이 얼어붙으면 이것을 무엇으로 다스리랴. 한 잔의 독주만이 언 몸을 녹일 수 있으리라. 러시아에서 독한 보드카가 어째서 인기가 있는 줄 아느냐. 추운 지방일수록 禦寒(어한)을 위해 독한 술이 필요 하노라.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고 술은 입으로 들어온다’는 말처럼 연애시절에 마시는 한 잔의 포도주는 그 아니 달콤하랴. 축제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 마시는 한 잔의 샴페인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고된 농사일을 하다 새참에 마시는 한 잔의 농주는 노동의 고달픔을 잊게 해주고 힘을 복도워 주는 것을 나 또한 모르지 않도다.


우리 민족이 누구더냐. 그 옛날 만주벌판을 말타고 달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대륙의 후손이 아니냐. 옛 책에 이르기를 우리 민족은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하였으니 음주를 좋아함은 우리 민족의 심성에 면면히 흐르는 본능이 아닐쏘냐.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 날 땀 흘린 운동 뒤에 냉장이 잘 된 시원한 한 잔의 맥주를 생각하면 절로 침이 넘어감을 어쩔 수 없다.


술 한잔이 들어가면 가슴이 훈훈해 져 음주자의 도량이 넓어 진 듯하고 둘째 잔을 들이키면 세상의 모든 일을 이해하는 듯 하고 셋째 잔이 들어가면 어려운 일, 힘든 일을 내가 다 떠맡을 양 한다. 허나 더 많은 술이 몸속을 휘저으면 마침내 인사불성이 되어 주태백의 시성이 외려 우스워 보이고 제갈량의 적벽대전이 다 내 꾀에서 나온 듯 하다. 그뿐이랴?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고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보다 못해 이 한 몸 초개같이 사용코자 할 마음이 절로 우러나옴은 술에 취해 본 자 모두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옛말에 그른 것이 있더냐.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남자가 있으면 상대편에 여자가 있음은 만고의 진리라. 몇 천 년을 내려 온 조상들의 혜안이 이 같은 모순점을 잘 간파하였음을 알 수 있노라. 다량의 음주는 理性(이성)을 내 보내고 혼돈을 불러 온다느니 술 취한 개(犬)니 한 것은 과음으로 인한 사고를 일컫는다.


‘술을 마시다 보니 어제는 내가 네(집)속에서 술을 마셨는데 오늘은 이놈 집이 내 배속에 들어 앉았구나’라고 한 것은 술의 결정적인 단점을 지적한 게 아니더냐. 한 잔이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여러 번 되면 월급봉투가 다 날라 가고 가정사 파탄이 온다는 가요도 있지 않느냐.


혹자는 이렇게 말하며 잔을 권할지 몰라 미리 애기하노라. “그래도 분위기가 있는데 딱 한잔만 합시다.” “穀茶(곡차)라 하여 불도 닦는 스님들도 드시는데 괜찮아” 그래도 내가 안 마시면 “앞으로는 자네를 만나지 않으려네. 아 무슨 사람이 이렇게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가. 우리가 술 먹고 큰 사고를 친 적이 있는가. 안 그러면 술 마시고 가세가 기운 적이 있는가.”


 큰 스님들이야 생사경개를 자유로 넘나드니 곡차도 물이고 물도 곡차니 술에 자유로워 아무것이나 드셔도 되네. 산은 산이지만 물은 물이 아닐 수도 있음을 우리 범인들이 어찌 알랴.


내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한 잔쯤 마시는 것이 무리한 일, 아님을 모르지 않도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면 내 자신이 약함을 고백함이 아니겠느냐.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을 하면 접대를 위해 꼭 술을 마셔야 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처럼 통용된다. 그러나 한 때, 세계 기업을 운영한 대우그룹의 김우중회장은 한 방울의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도 회사를 운영하였음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노라. 인류사를 통틀어 4대 성인이라 불리는 분들은 술을 드시지 않았음이 명백하지 않더냐. 술이 좋은 것이라면 그렇게 드시지도 않고 오히려 술 마시는 것을 막았겠느냐. 허나 그렇게까지 큰 꿈이 없더라도 술을 못 마시면 졸장부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모르지 않도다.


내가 술 마시고 큰 사고를 친 적이 없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음을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바 아니도다. 逆(역)이나 이때까지 나지 않았던 사고가 앞으로도 발생치 않으리라는 것을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권투선수들을 보았는가. 시합 때 펀치 드링크라하여 잔 주먹을 많이 허용하면 나중에 링에 누울 수도 있음은 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잘 알 수 있다. 한 잔이 여러 잔 되면 골로 가노라. 그리고 멀쩡하게 마지막 라운드까지 잘 싸우다가도 한 방에 의해 캔버스에 대자로 누울 수 있는 것이 또한 진리이지 않느냐. 폭탄주도 가노라.


내가 병원에 근무하여 이런 것들을 숱하게 보았음을 고백하노라. 병원에 오는 환자들을 보면 건강하게 생활하다가도 어쩌다 발생하는 한 번의 교통사고로 인해 불귀의 객이 되기도 하고 장애인이 되는 것을 보았음을 고하여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고자 함이라.


그렇다고 내가 종교를 믿는다고 이런 얘기는 하지 말기를 바라노라. 이 세상에 소용되지 않는 것이 있을 리가 있겠느냐. 쌀은 우리 몸에 필요한 탄수화물을 공급해 주고 고기로 인해 단백질이 보충된다는 것은 영양의 기본 상식이랴. 심지어 毒(독)도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독으로 병을 치료한다. 에이즈가 무섭다고 한들 지금껏 몰라서 그렇지 그것이 생긴 것은 그 어떤 섭리가 있지 않겠나. 마찬가지로 술을 소용되게끔 만들어 논 그 무엇이 있지 않겠나. 맞아 아마 그렇겠지.


그러나 이런 얘기는 들어 보았나.



'깨어 있어라’   (성경)


욕심을 따라 계를 범하고

술에 빠지게 되면

그는 벌써 이승에 있어서

제 몸의 뿌리를 파는 것이다. (법구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강인 한강은 수많은 마을과 산을 질러 유유히 서해로 들어가는 것을 아지 못할 자 그 누가 있으랴. 이 장대한 강물의 발원지가 아주 조그만 샘터임을 아는가. 피나무 밑의 암반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물이 한강을 끼고 있는 수 천만 사람들의 목마름을 적셔 주니 마찬가지로 한 방울의 술이 종래에는 大河(대하)가 되지 않음을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알콜리즘도 한 방울의 술로써 시작되었노라.


나에게 금주를 단행하는 또 다른 유인이 있음을 알려 주겠노라. 딸의 눈에 비치는 아버지의 해롱해롱한 모습을 딸애가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임을 두려워하노라. 백년손님 또는 딸 도둑놈이라는 사위가 술에 절어 살면 딸애의 속이 얼마나 타겠느냐. 사위 넘이 딸애에게 “장인은 술 마셔도 되고 나는 안 되나”고 항변하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뭐라고 하겠는가? 신랑의 음주로 딸애의 고운 눈에서 눈물 가실 날이 없으면 그것을 맨 정신으로 어찌 볼 수 있을 터인가.


내 술 마시는 매너가 좋다 하여 나와 술 한잔 마시고 싶은 이는 아쉽지만 발길을 돌리는게 나으리라. 나와 담소를 즐기려고 술을 핑계 삼는 이들은 그야말로 담소를 즐기면 되노라. 酩酊 (명정 :수주 변영로의 ‘명정 40년’에 나온 造語(조어)로 술에 취해 해롱 해롱한다는 뜻임.)에 빠진 이와 나누는 대화는 다정하게 헤어지는 것보다 욕설과 고함으로 別離(별리)하는 경우가 더욱 많은 게 인지 상정이 아니겠느냐?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감안하여 술을 끊기로 했으니 知人(지인)들은 작심삼일이라 비웃지 말고 본인을 격려하며 용기를 줄지어라.


2001년 7월 3일


 

附則(부칙) : 이 선언문을 세계 만방에 고함에 있어 그 적법성과 합목적성을 확인코자 조약법을 전공한 국제법학자들과 국제변호사들의 조력을 받자하여 이 선언문을 공포한 날부터 7일간 금주를 유예하니 목마른 자 나에게 연락할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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