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친구야!

맛깔 2011. 7. 9. 07:41

 

요새 우찌 지내노. 연락 안 해 가꼬 미안타꼬. 괘안타. 친구끼리 미안한기 어딘노. 그건 그렇고 제수씨하고 아~들도 잘 이쩨. 이 헹님도 형수하고 다 잘 있다. 니는 마 연락도 엄꼬 하이 궁금타 아이가. 

 

저번 주에 나는 마누라하고 서울갔다 왔다 아이가. 너거 헹수님 말로는 핵쪼가서 아~들 갈치고 한 푼 더 버러 볼끼라꼬 집에 와서도 아~들을 갈치니께 피곤해 죽겠다고 안하나. 그래 가꼬 내가 마 큰 맘 묵꼬 내도 몬 묵는 한약 한재 떡하이 안 지준나. 내사 괘안타 마. 쪼깨 피곤해도 새벽에 퍼득 일나가지고 일년 열두달처럼 아파트 열두바꾸 돌미는 한시간 걸리는데 그라고 들어 와 밥 무거면 밥맛이 꿀맛이고 몸속에 있는 노폐물이 다 달아나는 것 같다. 그라이 무신 약이 필요 이껜노. 

 

내가 사는 아파트가 靑丘(청구)다. 니 내 등산 좋아하는 거 알제. 지리산, 설악산에 가먼 비 올 때 雲霧(운무)끼는거 있제. 얼마나 머찌더노. 오늘 아침에 나가 보이끼네 비가 쪼끔 오데. 그래 가꼬 도로 들어 올라꼬 하이끼네 좀 있다 가라고 이슬비가 내리데. 그래 뛰었다. 아파트 뒷산하고 건너편 개운못에 운무가 퍼져 있는데 선경이 따로 없데. 이상한 생각말고 엉덩이가 예쁜 영화배우 정선경이 말고 신선들이 사는 동네 말이다. 진짜 좋대. 

 

우리 동네에 좋은기 또 하나 있대이. 아마 상주사람들도 잘 모릴끼다. 건너편이 開雲洞(개운동)인데 옛날에 이 마을에 開雲祖師(개운조사)가 살았단다. 開雲(개운)이 법명인데 이것은 그냥 본인이 짓는기 아이고 스승님이 지준다 안카나. 구름이 앞을 가렸다가 공부해 가꼬 그것을 딱 열어 노이끼네 얼매나 환하겠노. 그 경개를 누가 알겠노? 

 

한 참 뛰다 보이끼네 고마 들어 가라꼬 가랑비가 안 오나. 마 들어 와 가꼬 니한테 글 쓴다. 아이고 정신바라. 보약이야기 한다꼬 하다가 고마 옆길로 샜네.  니는 양조장하고 고기집 하이끼네 돈 잘 버린다 아이가. 제수씨한테 밍크코트 천만원짜리 한 벌 사 주 바라. 그때는 제수씨가 좋다 하게쩨. 동창모임에 나가면 막 자랑 안 하겠나. 그때 뿌이다. 우째 그거를 모리네. 그라다가 니가 이 밥충아 라고 한 번 해바라. 그때는 마누라 가슴에 못이 칵 바기뿐다 아이가. 그라믄 천만원짜리 밍크 날라 가삔다. 

 

이 헹님은 말이다. 돈 잘 못벌제. 그래도 아내가 좋다 안 하나. 와 그란줄 아나. 나는 항상 아내를 여왕처럼 모시고 사는 척 안 하나. 당신 최고다. 당신 너무 이뿌다. 이래 바라 마누라가 진짜로 지가 최고로 예쁜 줄 안다 아이가. 내가 지한테 쪼매 말로만 잘해 주믄 어쩌다 지한테 잘 모테도 그냥 마 안 바주나. 니도 진짜로 불출이처럼 해 바라. 그래도 마누라가 강짜부리면 내가 A/S센타에 가가꼬 싹 바까주께. 나는 너거 형수한테 천만원짜리 밍크코트 안 사주도 잘 산다.

 

헹수님 옷에 HP가 무슨 말인줄 아나. Hewlette과 Packard가 세운 프린터와 계측기 전문회사인 HP라꼬. 아이다 니 우째 그거또 모리노. 내가 니한테도 비밀로 했나. Home Priority라고 ‘가정제일주의’란 내 비밀마크다. 다른 사람들한테 비밀로 해라. 안 그라믄 조직의 시븐 맛을 보여 줄끼다. 

 

참 이번에 메일을 보내면서 헹수님과 아이들 사진도 가치 보내주께. 며칠 전에 머라더라 아 마따 전교조에서 달밤 시조짓기 대회를 한다꼬 오라더라. 유진이 3학년때 선생님이 전교조에 있거든. 남장사에 가서 찌근 사진인데 핀트가 쪼매 안 맞는다. 우짜꼬? 잘 마차시먼 우리 마누라 - 너거 헹수님 말이다 - 대낄로 예쁠낀데 아시버 죽겠다. 건대 우리 마누라 진짜 예뿌제 기여바 죽겠다. 마 옛날에 고생시킨거 생각카먼 미안키도 하고. 친구야 내가 불출이제. 니도 한 번 해 바라. 집이 얼마나 편해 지는 줄 모린다. 

 

내가 니한테 한번 그랬쩨. 우리나라 말은 참 아름답고 좋은데 남들한테 못 박는 소리를 잘 하는 편이데이. 그기 다 修辭學(수사학)이 발달안 해서 그렇다. 왜냐하면 직설적으로 말하면 말하는 사람이야 화끈하다 할지 모리지만 듣는 사람 가슴에 못 박히는 거슬 모르제.

 

미국사람들한테 한 번 물어 바라. 학실히 틀린 것을 물어 보면 그 사람들이 뭐라겠노. 틀맀다(It is not true)안하고 이런말 쓴데이. I have no idea(그런 생각이 없는데요. - 마 우리말로는 대충 그렇게 생각안합니다라고 번역한데이) 아이먼 I don't think so(그렇게 생각안합니다.)라고 하이끼네 묻는 한국사람들이 헷갈리제. 마 어느기 조은줄은 모르지만 적어도 남한테 못박는 소리는 안해야 안되겠나. 

 

그라믄 바쁜 아침인데 고마 출근해레이. 잡지에 실린 니 사진 잘 바뎄이. 열심히 살아 가래이

                                                                                                (2002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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