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의 장인들/실크로드 탐험대원

윤승철 청년탐험대장, 남들은 미쳤다는 지옥길을 달렸다. 대한민국실크로드탐험대원(2)

맛깔 2013. 4. 8. 19:49

 

 

2011년 10월 사하라 사막 마라톤 출발점에 섰다. 등에 진 배낭에는 6박 7일 동안 250키로미터를 뛰면서 

먹을 음식과 침낭, 구조를 대비해 나침반, 거울, 호루라기, 깜빡이 등과 체온 유지와 더위를 막는 응급보온포가 있다. 

키트다.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45개국에서 온 선수들 180여 명은 출발점에 서서 환호작약하고 있는데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죽음의 길을 달리기 위해 겪은 험난한 여정 때문일까? 


선수들 나이는 가장 어린 20대 초반의 나부터 70대까지고 여자도 있다. 70대는 노인이 아니다. 

얼마나 잘 가꾸었는지 몸매에서 청춘의 열기가 느껴진다.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달리 수 있을까? 

내가 우리나라 역대 최연소 그랜드 슬램 달성자다.

 

 

누군가 물었다. “왜 사하라 사막, 고비 사막, 아타카마 사막과 남극 대륙을 달리려고 합니까?” 

네 곳을 다 종주하면 그랜드 슬램이라 한다. “그냥 하고 싶어서요.”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거창한 답을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원대한 포부와 아름다운 꿈 얘기는 나의 몫이 아니다. 

거대한 꿈을 펼치기 위해 오늘 점심에 김치찌개를 먹은 것이 아니듯 나는 그냥 달리고 싶었다. 

달리는 것은 나의 꿈이었다.

 

 

중학교 때 유리를 밟고 넘어져 전갱이 뼈가 부러지고 발목이 돌아가 몇 개월을 입원했다. 

왼쪽 다리 성장판을 다쳐 성장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오른쪽 다리에 성장 억제제를 맞을 뻔 했지만 

다행히 괜찮았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운동은 딴 나라 얘기였다. 인생이란 늘 그렇듯이 

하나를 잃으면 얻는 것도 있다. 입원하는 동안 많은 책을 읽은 덕에 글쓰기가 재미있어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했다. 부상으로 평생의 진로를 찾은 것이다.

 

 

대학 1학년 때 TV에서 사하라 사막을 달리는 사람들을 봤다. 순간 심장이 벌렁거렸다. 

다친 다리 때문에 활동하지 못하던 시기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일까? 달리고 싶었다. 어떤 이유로든 달리고 싶었다. 

교수님이 내준 과제에도 달리는 청춘을 주인공으로 삼으려고 했다.

 

'윤승철, 나약하게 살면 안 되지.’ 스스로 다짐했다. 사막을 달리는 꿈을 꾸기 시작한 날부터 

꾸준히 걸었다. 운동 안 한 다리 근육이 너무 약해 걷기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남산을 꾸준히 걸었다. 그해 11월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체력이 완전히 회복 됐냐고요? 

그러기에는 다친 후유증이 너무 컸고 회복 기간은 짧았다. 하지만 정신은 강해졌다.

 

 

해병대 훈련은 고됐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고된 훈련은 사막을 달릴 수 있도록 근육을 

것이고 여기서 배우는 생존술은 어떤 악조건에서도 나를 살려 줄 것이다.’ 포항과 제주도, 

백령도에서 받은 공정부대의 극한 훈련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나를 보고 동기들은 변태라고 불렀다. 

나, 윤승철은 꿈이 있기에 행복했다. 희망이 있는 삶은 어떠한 현재의 고난도 참을 수 있는 법.

 

복학 후 몸 가꾸기를 꾸준히 했다. 사막 마라톤에 드는 경비 마련을 위해 백 여 군데의 회사를 찾아갔다. 

참가비 380여 만원, 항공료, 음식, 옷 등을 구입하는데 쓰는 돈이다. 모두 5백 여만원 정도 들었다. 

거의 다 거절했지만 다행히 몇 군데서 경비 지원을 해 줬다. 남극 경기에 참가하기 전, 인터넷에 

소셜펀딩 사이트를 만들어 100명이 넘는 분들에게 후원금을 받기도 했다. 1700여 만원이 드는 

참가비와 경비를 이 사이트를 통해 마련할 수 있었다.

 

 

2011년 10월 사막 마라톤을 위해 사하라로 날아갔다.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것은 아침, 저녁으로 뜨거운 물. 

아침 출발 때 1.5리터 물 3 팩. 밤에 잘 수 있는 텐트. 먹거리, 옷, 침낭 등은 모두 개인이 준비해야 했다. 

주로 라면을 많이 먹었는데 부피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라면은 부셔서 지퍼백에 넣는다. 


아침 저녁으로 뜨거운 물을 부어 대충 익은 라면을 먹을 때의 행복감은 사막 마라톤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점심은 비상식량으로 때운다. 텐트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10여 명이 잔다. 


너무 고된 경기라 이성을 의식할 수 없어 그럴 것이다. 유럽 문화가 남녀 가리지 않는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

 

 

머리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어서 머리를 만져본다. 땀이다. 섭씨 50도의 사막을 달리는 기분은 어떨 것 같은가? 

미친 짓이다. 제 정신이라면 달리지 않는다. 달리는 동안 사하라 사막 경기에 참가한 것을 후회하고 

다시는 뛰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응원해 준 사람을 그려보면 사라진다. 

버티게 하는 것은 또 있다. 뛰는 동안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한다. 짜장면, 냉면, 불고기, 회 등 

온갖 음식들이 떼로 몰려온다. 본능만 살아 있어서인지 삶의 의미 같은 가치 있는 것은 생각 할 수 없다. 

그것은 사치다. 오로지 살아야만 한다.

 

 

 

길은 잃어버리지 않게 200에서 300미터마다 길을 표시하는 작은 깃발이 꽂혀있다. 

정신없이 가다가 길을 잃어버렸는데 뒤에 오던 선수 두 명이 발견하고 따라왔다. 

고함을 치며 손을 흔들기에 나도 반가워 마주 흔들었다. 그러면서 50분 정도 갔다. 

나를 따라 잡은 선수는 길을 잘못 가는 나에게 알려 주려 왔다고 했다. 

사막의 50분, 되돌아 가야할 50분이 또 남았다.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을 건 우정은 그렇게 쌓여간다. 

 

저녁 도착 지점에서 다리를 펴고 부서진 라면에 물을 부어 먹으면 피로가 몰려가고 

내일 또 다시 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특식도 있다. 비상식량 비빔밥이다. 

사막에서 최고의 별미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몸을 씻지 않냐고? 씻을 물이 어디 있나? 그냥 잔다.

 

마침내 결승점, 많은 선수들이 울었다. 왜 우는지 모른다. 고된 여정이 끝나서일까? 

불가능할 것 같은 완주라는 성취감 때문일까? 나는 울지 않고 맛있게 차려진 음식을 찾았다. 

완주 후 주최측에서 차려 놓은 음식은 거의 환상적인 맛이다. 배가 고파서일까? 음식이 맛있어 일까? 

고맙게도 또 뛰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2012년 3월, 6월, 10월과 12월에 칠레 아타카마, 고비, 사하라 사막과 남극 대륙을 뛰었다. 

남극 대륙 마라톤은 두 개 이상의 사막을 뛴 사람들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지고 2년에 한 번 열린다. 

사막은 모래, 고비 사막은 바람, 아타카마 사막은 자갈, 암벽, 언덕, 소금 사막의 특징이 있다. 

그때도 뛰면서 후회하고 참가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또 헸다. 그러나 완주하면 또 달리고 싶다. 

내가 뛰던 아타카마 사막에서 수 십 년 만에 한 번 온다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렸다. 

경기가 중단되고 다음 날 주최 측은 구간 완주 선수들의 평균 기록으로 모두가 뛴 것으로 

인정해 주겠다고 했지만 선수 전원이 전날 뛰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대회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아마도 이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기록을 만들기 위해 참가했던 것은 아니다. 운이 좋게도 첫 대회에 출전했을 때가 최소 참가자격

 나이인 만21세가 된지 이틀 뒤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글 쓰는 문필가가 되려고 한다. 

읽고 생각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글로 풀어낼 것이다. 손미나 작가와 연락이 돼 그로부터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받았다. 달리며 정리했던 것들을 ‘달리는 청춘의 시’라는 제목으로 출간한다. 

손미나 작가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살면서 힘든 일은 많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사막을 달린 기억과 밤 하늘의 별을 헤던 

떠 올리면 내 인생 내가 설계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정리 : 하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