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의 장인들/실크로드 탐험대원

구석구석 경주 남산을 아는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장

맛깔 2013. 4. 17. 10:04

경주 남산 구석구석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장

 

 

이름이 심상찮다. 조상님의 음덕이렷다. 이름값으로 먹고 사는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장의 얘기다. 김 소장은 경주 남산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다. 아니 모르는 게 없을 수가 없겠지만 그렇게 안 보인다. 김 소장의 장점이다. 같은 값에 좋아 보이는 게 좋지 않은가.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장 (왼쪽, 시안 공항, 4월 6일)

 

이름 덕인가? 김 소장은 정말로 경주 남산 박사다. 구석구석 물어도 답이 다 나오니 묻는 사람이 약 오른다. 그래서 나름 머리를 짜고 까마득한 유년의 기억을 끄집어 내 물어도 또 답을 얻는다. 에잇, 할 수 없다. 이름이 그러니 다 알 수밖에. 괜히 이름 탓을 한다.

 

김 소장은 큰 덩치와 우렁찬 목소리 그리고 이름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의 기억을 사로잡는다. 몇 년 전 경주 남산에서 처음 소개 받았을 때의 감흥으로 지금도 그를 기억하니 분명 특이한 개성을 지녔음이 틀림없다. 불러달라고 이름 지었는데 몇 번 만나도 모른다면 머쓱할 테지.

 

아무도 모른다. 김 소장은 의외로 섬세한 면이 있는 것을. 코끼리 다리 같은 손으로 10인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것을 보면 예술이다. 예술인은 감성이 예민하다. 김 소장은 배려심이 많다. 이국 음식에 힘들어 하는 사람을 보고 끊임없이 먹을 것을 주시니 고량주, 과자, 음료수 등이 그의 배려품이다. 사랑이 넘치사 잔 가득 술을 부어 테이블을 찾아주시니 그 아니 감동치 않으리. 또 하나. 일행이 침울할 때 그는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무엇 하나 꺼내 입에 댄다. 투박한 손으로 조그만 구멍을 막고 오카니라를 부는 그의 배려심에 우울함이 가신다.

 

김 소장은 고향 경주를 너무도 사랑하는 공무원이었다. 30년 전 갓 20대 후반에 경주남산사랑모임을 결성하고 동호회원들과 함께 경주와 남산을 구석구석 답사했다. 여기서도 이름이 빛을 발휘한다. 사랑하면 예쁘게 단장해 주고 자랑해야지. 남산을 청소하고 남산을 알렸다. 10년 세월도 넘게 회원들과 함께 활동하니 동호회와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 소장은 경주의 명물이 됐다.

 

IMF가 터지자 김 소장은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떠 올렸다. 남들이 어려워 할 때 본격적으로 남산을 위해 일을 하자. 남들이 물러 설 때 내가 투자를 하면 곧 정상에 오르겠지. 백범 김구의 문화 민족 얘기를 생각하니 신바람이 났다. 곧 문화 시대가 올 것을 알았으니까.

 

그동안 쌓아 올린 내공으로 남산유적답사 강좌를 열었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이해 폭이 넓어지게 될 테지. 입소문은 명품을 낳고 김구석 소장이 명품이 되면 김 소장의 열정 때문에 남산지킴이가 더 늘어나겠지. 반응은 기대 이상이어서 회원들이 증가하고 남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김 소장은, 물론 그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호방하게 웃는 김 소장이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감동받는다. 겸손하지 않을 것 같은 김 소장의 겸손한 손사래에 감동받는 회원들이 또 다른 회원을 불러 모았다. 

 

불철주야 공부로 늘어나는 지식에 비례해 모자람도 더욱 늘어나는 것 같았다. 삼국유사를 거의 달달 외다시피 해도 그랬다. 삼국유사에 나온 경주 이야기는 27번 정도며 이를 명쾌하게 해설하면서도 그렇다. 김 소장은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를 공부하고 10명 내외를 모아 그룹스터디를 병행했다. 경주 관련 자료는 모두 모으고 고수를 찾아가 배워도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연구소 벽장을 에워싼 책을 보면 경주 이야기가 모두 있을 법 하지만 아니라고 한다. 책으로 보는 것과 현지 답사해 보는 것과는 천지 차이라는 얘기다. “3센티미터와 10미터 불상을 인쇄하면 한 페이지 정도 됩니다. 책으로는 작은 섬세함과 큰 웅장함을 느낄 수 없어 실물을 봐야만 감흥이 몸에 와 닿습니다.”  

 

말보다 주먹이 더 앞설 것 같은, 아니 언행일치보다 행동이 더 빠를 것 같은 김 소장은 생각 즉시 실행에 옮겼다. 인도, 중국 둔황 막고굴, 운강, 용문석굴, 트루판 베제클리크 등을 15 차례 이상 드나드니 새로운 것이 보였다. 용문석굴에서 자장 율사께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조성한 불상에 새겨진 희미한 글도 찾아 사람들에게도 알려 줬다. 이를 위해 망원경도 가져다니는 김 소장의 치밀함. 답사를 해보니 도록과 실물 차이가 확연히 한 눈에 들어왔다. 경주 석굴암 부처님의 세련된 모습이 인도에서 기원해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도 눈에 보였다. 눈을 뜨게 해 준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김 소장은 팬들이 많다.’고 인용한 것은 들은 풍문이기 때문이다. 조금 거시기 한 농담도 아닌 것처럼 슬쩍 말하는 재주와 침 튀기며 생생하게 본 것처럼 설명하는 재능에 사람들은 찬탄한다. “김 소장이 말했으니 진짜야.”라고 김 소장이 판단의 근거가 되니 김 소장 어깨가 무겁겠다. 언행이 신중해져야 한다는 말씀.

 

한 학기 배출되는 100 명 가량의 제자 공부를 10년 이상 지속했으니 경주 어디를 가나 김 소장은 화제의 중심이다. 앞으로도 이 사람들과 함께 김 소장은 경주 남산을 알리는 데 모든 힘을 다할 것이니 남산에 몸 감추고 계신 부처님들께서는 부디 김 소장에게 현몽하시어 잃어버린 역사와 진리를 깨우쳐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