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옛 비단길에서 신라의 혼을 만나다. (6-1)

맛깔 2013. 5. 27. 07:00

월간중앙 2013년 6월호 210~215페이지

글 : 하춘도, 사진 : 정철훈 사진작가

 

 

'마음의 설렘으로 봄을 가늠한다.’

실크로드 대상은 짐을 꾸리며 모진 겨울을 이겨낸 봄꽃을 상상하고 그 희망으로 고난의 길을 떠난다.

 

 

 

 

남루한 옷차림의 남편이 웃고 있었다. 칭얼거리는 애를 달래고 설핏 잠이 들었을까? 실크로드 길을 떠난 후

무사히 돌아오도록 오매불망 기도하며 그리던 남편이었다. 다가서려니 큰 소리가 들렸다. 비파, 퉁소, 피리,

괭과리 소리가 괭괭 삐리 삐리하며 귀를 때렸다. 악기 소리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

실크로드 사람들이 돌아온다.”

 

실크로드가 무엇인가? 해양, 초원, 오아시스 실크로드로 나뉜다지만 이것은 후세 학자들의 분류고

실크로드 대상들에게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오가던 길일 뿐이었다. 태초에 없던 길이 사람들에 의해

길이 생기고 호기심과 생계를 위해 조금씩 길을 나가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상품을 교환하여

그 길이 생명의 길이 되었다. 아니 이 길 따라 삶이 풍족해 졌기도 했지만 숱한 죽음도 생겼다.

길 따라 문물도 교류되었고 전쟁 또한 발생했던 것이다.

 

 

삼국통일 전, 신라가 백제와 전쟁을 시작할 무렵부터 지배층과 지식인들은 백제에 이어 고구려를 치고

우호국 당나라와의 일전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태양은 둘이 없는 법. 당나라는 통일신라를 넘볼

것이라고 했다. 신라인들은 조용히 힘을 길렀다. 황산벌 싸움의 화랑 관창이 그렇듯 화랑들은 기백이

넘쳤고 농기구와 병장기를 잡는 청장년들의 팔뚝에는 힘줄이 불끈 솟았다. 뛰어난 외교 전략가 김춘추는

웃으며 당나라와 화평하게 지냈고 김유신은 군마를 조련했다. 신라인들은 남의 땅을 넘보지는 않겠지만

내 땅은 한 치라도 내 놓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신라실크로드 대상들은 고구려를 패망시킨 후, 그러니까 나당 전쟁 발발 2년 전에 실크로드 길을 떠났던

상인들이었다. 나당 전쟁의 불씨가 지피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지만 설마하며 대상들은 상단을 꾸렸다.

신라조정은 당나라의 정세도 알아볼 겸 해 실크로드 대상들의 출발을 만류하지 않았다. 보통 실크로드로

떠나는 상단은 국가 무역이었다.

 

그래서 관리들이 주추을 이루었지만 이번에는 행정 처리와 기록을 위한 몇 사람의 관리 외에는 모두

상인들로 꾸렸다. 대략 3백 여명으로 이뤄진 꽤 큰 규모였다. 개울이 아빠는 짐꾼이었다. 떠난 지 만 3년째

되던 해 귀환한 상인들의 차림새를 보니 많은 고초를 겪은 품세가 역력했다. 떠날 때와 달리 다시 볼 수 없는

얼굴들은 도중에 질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이다.

 

 

 

한창 때의 실크로드 대상은 6~7백 여명의 상단을 꾸리고 육로로 당항성(지금의 경기도 화성)까지 가서

중국으로 배를 띄웠다. 장보고가 뛰어난 항해술과 지략으로 해상왕으로 불렸다. 당시의 항해술로는

감포, 울산항에서 출발할 수 있었지만 당항성을 출발하는 바닷길이 상대적으로 더 안전했다. 

 

개울이 아빠가 끼어 있는 상단에 당나라 사람들도 처음에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의 불씨가

모락모락 피어오르자 신라인들을 눈에 띄게 괄시하r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쟁이 나기 얼마 전부터 상단

사람들을 신라(細作, 간첩)이라며 감옥에 가두고 취조를 엄하게 했다.

 

 

 

다행히 신라승들의 법력에 감읍한 당나라 고위 관리들이 구법승들의 중재로 이들 일행을 풀어줬다.

고려 때도 실크로드 길을 떠났던 고려인들이 있었지만 빛바랜 기록 때문에 신라 실크로드 대상들이

최후의 실크로드 대상으로 알려졌다. 때가 문무왕 20년, 680년 경이다. 그뒤로 이 땅 사람들의 뇌리에서

실크로드는 점차 잊혀지는 존재가 되었다.

 

신라인이 다녔던 해양 실크로드에는 갈매기 날개 짓이 미약했고 오아시스 실크로드에는 야자수 잎이

맥없이 처졌으며 지나 다녔던 길가 주막에는 신라의 깃발이 외롭게 나부꼈다.

 

 

 

그로부터 1350 여년 후 신라인의 실크로드 상단에 대한 기억이 바래졌을 때 ‘대한민국경상북도

실크로드 탐험대 잊혀졌던 실크로드의 역사 기록을 복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