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아들 어머니는 시어머니

맛깔 2016. 9. 18. 05:31

아들 어머니는 시어머니

 

저에게는 시어머니가 있고 아내에게는 친정어머니가 두 분(?) 계십니다. 한 분은 낳아주신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시집오면서 생긴 분으로 남편 어머니가 친정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석에 집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내와 저 그리고 두 딸인 우리 가족을 반겨주십니다. 특히 장남인 저에게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우리 장남 왔냐.”고 하시니 저를 낳고 키워 주신 분 맞습니다. 아내에게는 우리 딸 왔냐.”고 안 하시니 저를 분명 낳아주신 분이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제가 갓 결혼 했을 때 어머니는 맛있는 반찬을 제 앞으로 자꾸 밀어주셔서 아내보기가 민망했습니다. 무던한 아내는 말하지 않았지만 저는 밥 먹을 때 상당히 부담스러웠고 아내 눈치가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 맛있는 반찬을 집사람에게도 주세요.”라든가 저에게 맛있는 반찬을 주시면 어머니 며느리가 섭섭할 거예요.”라는 말을 못했습니다.

 

몇 년 전, 선배를 만나러 갔을 때도 그런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선배 부부와 그의 30대 후반 아들 그리고 저, 네 사람이 밥을 먹을 때 형수는 맛있는 반찬을 그 아들 앞으로 자꾸 밀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불쾌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성은 그런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자연적으로 자식을 챙겨주게 돼 있었습니다. 책 읽고 모자지간을 관찰해보니 그렇더군요. 모성 본능이라고 할까요? 늦게 여자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명절에 설거지를 합니다. 명절에 어머니 집에서는 도맡다시피 하고 처갓집에서는 제가 깃발을 잡습니다. 그러면 장모님께서 이번 설거지는 하 서방이 했으니 다음 차례는 우리 아들들이 돌아가면서 해라.”고 하십니다. 처남댁이 무척 부러워합니다. 저희 집이나 처갓집 모두 음식은 여자들이 하되 설거지는 남자 몫입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전화할 때 며느리가 애들 가르치느라 힘드니 설거지와 청소는 도와주라.”고 말씀하시지만 처음에는 본가에 와서도 설거지를 하는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고무장갑을 끼면 집에서 하는 설거지로 충분하다. 여자들이 몇 명인데 우리 아들 3형제가 설거지를 하냐?”면서 아내 모르게 옷을 잡아끌고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시든 설거지를 몇 년째 하니까 이제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 어머니 수세미가 좋네요. 잘 씻겨요.

어머니 : 그렇지. 사은품으로 받은 건데 하나 줄 테니 잘 쓰라. 반으로 자르지 말고 사용해라. 반으로 자르면 불편해.

: 고맙습니다.

 

참 우리 가족은 추석 바로 전날 오후 3시에 본가에 도착해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명절 음식은 누가 하냐고요? 여동생의 얘기입니다.

 

어머니 : 그렇게 꾸물대지 말고 오빠 식구 오기 전에 빨리 음식을 장만하자.

여동생 : 언니가 오면 같이 하면 되잖아요.

어머니 : 시끄럽다. 언니는 애들 가르친다고 힘드니 여유 있는 우리가 다 해놓아야 한다.

여동생 : (다소곳한 목소리로)

어머니와 동생은 장보고 튀김, 나물, 고기 등을 준비해 놓으셨더군요.

 

저에게 때때로 생활 강의도 해 주십니다.

탕국은 고기에 참기름을 넣어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을 때 무시(무의 경상도 표준어)를 넣어라. 처음부터 무시를 넣으면 물러진다.” “집안일은 시간이 있는 사람이 하는 거지 남녀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며느리는 시집 잘 못 와서 고생한다.” “네가 좀 더 잘해라.”

 

이런 얘기를 들으면 제 기분은 어떨까요? 아내가 친정어머니 아닌 친정어머니(?)를 좋아하니 제 입도 귓가에 걸립니다. 어머니는 남편의 가부장적인 태도에 질려서 그렇게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쩌다 네 아버지 같은 사람은 하늘 밑에 없을 거다. 손가락 하나 까닥 안했다.”는 말을 하시는 것을 보면 알겠습니다.

 

아내가 이 글을 보면 한 마디 할 것입니다. “아이고 민주 남편 나셨네!

 

사족 : 저는 아내 검열 가능성에 대비해 절대로 글을 꾸미지 않았음.

'삶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 생일 (3-2, 2009년)  (0) 2012.12.02
아내 생일 (3-1, 2002년)  (0) 2012.11.30
황혼  (0) 2012.09.22
풍각쟁이 은진  (0) 2012.06.19
친구야!  (0) 2011.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