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보물섬, 남해 여행 (1)

맛깔 2011. 7. 18. 10:16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는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어가 호기롭게 들렸나보다.

수많은 글에서 그의 아류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 까까머리 고등학생도 시인의 속내는 모르고

나를 키운 건 8할이 방랑벽이고 소설이며 막걸리라고 떠들었다.

한 세대 지난 후 미당 선생의 생가를 가보니 ‘8할의 바람’, 시어는 사어(死語)가 아님을 알게 되었으니...

 

 

시원(始原)도 모르게 불어 온, 미당이 뛰놀던 줄포만의 바닷바람은 어린 미당을 휘감아 돌며

몸을 자라게 했고 또 그 바람은 사춘기 미당의 생각을 키웠을 것이다. 출향하고 세파에 시달릴 때

시인은 그 바람이 그리웠고 노년에는 그 바람이 귓가에 맴돌았을 것이다. 미당의 고향에 가서야

 ‘8할의 바람이 살아 있는 언어임을 알게 되었으니...


  

보물섬 남해군이라고들 한다.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그 바다는

한반도의 동쪽과 남쪽과 서쪽에 있다. 남쪽 바다를 이름하여 남해라고 하는데 남쪽 바다를

대표하는 양 남해라는 고장이 있으니 바로 남해군이다. 남해에  면한 많은 고을을 제치고

남해라는 이름을 고장 이름에 번듯이 붙여도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더군다나 보물섬이라고 한들 시기하는 사람도 없다.

 

서포 김만중 나타나다.


이 사람 날세, 일어나게

누구시라고요?

어허 참 답답한 친굴세. 서포 김만중일세.”

서포 선생이라면 벌써 300여 년 전 어른 아니신가요?

그것은 아네 그려

이게 어찌 된 일인지요. 서포 선생이 환생하셨는지요? 아님 제가 서포 선생이 계신 곳으로 갔는지요?

살다보면 일도양단이 안 되는 경우가 있네. 자네가 남해를 알리는 글을 쓴다고 고심한다기에

자네를 도우러 왔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는 것은 없고 생각이 짧은데다 붓은 무뎌 걱정만 태산이었는데 도움을 주신다니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만, 생신지 꿈인지 당최 무슨 일인지?

그것보다 일이 먼저네. 내가 일러주는 것 보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른 듯 하이.

자네가 알고 싶은 것을 물어보게

남해군이 남쪽 바다 전체가 아닌데도 왜 남해라 불리는지요?

여태까지 밝혀진 정확한 고증은 없네. 단지 남해 바다에서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리적 중심이고

남해안의 중심지역이라 그렇다고 하지. 그래서 남해 사람들, 아니 남해군민들은

자기 고향 남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남해를 보물섬이라고들 부르는데 그것도 궁금합니다.

어허 자네도 참 답답허이. 남해를 죽 둘러보고 무엇을 봤나? 그렇지 절경도 있고 문화재도

많고 내가 유배당했던 노도도 있잖은가? 76여개의 무인도와 3개의 유인도로 이루어진

남해는 해안선 800여리에 곳곳이 보물천지야. 그래서 보물섬이라 부르는 거지

 

서포 선생의 고향이 남해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요...

(서포 선생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린다. 고개를 들어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말을 잇는다.)

우리 형제들을 키우신, 해평 윤씨라고 알려 진 어머니를 생각했네. 인조의 장인인 해남부원군

윤두수의 4대손이고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방()의 증손녀이며 이조참판 지의 따님이지.

좋은 집안에서 고생을 모르고 자라셨는데 일찍 홀로 되셔서 온갖 고생을 다 하셨어.

생활이 어려워 베 짜고 수놓고 생계를 꾸려 가셨지만 교육열은 대단하셔서

우리들에게 직접 한학을 가르쳤어내 시호가 문효야. 글과 효에 뛰어나다고 붙여진 것이지.

이게 다 어머니 생각을 하며 노력한 덕택이지.

 

내가 남해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사친(思親)’이란 시가 있으니 한 번 들어보게나.

 

오늘 아침 사친의 시 쓰려 하는데

글씨도 이루기 전에 눈물 먼저 가리우네

몇 번이나 붓을 적시다 도로 던져 버렸나

응당 문집 가운데 이 시는 빠지겠네.

 

내 호가 서포(西浦). 서쪽 포구란 말이지. 어릴 때 이름은 선생(船生)으로 배에서 태어났다는 뜻이고.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로 어머니가 배에서 나를 낳아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하네.

이름과 호가 바다와 관련 있고 남해로 유배를 와 여기서 생을 마쳤지.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니 나쁘지는 않네. 사람은 난 곳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아니겠나.

 

내 비록 유학을 공부한 선비지만 사씨남정기나 구운몽에 불교 사상을 엿볼 수 있도록 하였으니

마음이 열려 있다고 해야 맞는 게지. 남해로 유배를 와 한글로 사씨남정기를 지었어.

나도 과거에 급제 할 정도로 한학에 조예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소설은 한글로 써야 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지.

서포만필에서 이렇게도 주장했어. “자기 나라 말을 버려두고 남의 나라 말로 시문을 짓는다는 것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 내 나라 말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좋을 수가 없기도 하고

한문을 모르는 배움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

아마 이것은 자유로운 정신과 이웃을 위한 배려라고나 할까.

 

후손들이 고마우이. 유배문학관을 건립하여 유배 온 조상들을 기억해주니.

참 남해가 유배지로 선택된 이유를 아는가? 정사에는 아마 이렇게 적혀 있지 않았을지 모르겠네.

남해는 섬으로 드나듦이 불편하여 귀양 간 자들이 외부와 교통하기 어려워 이를 귀양지로 택하였다.

옛 사람들이 그렇게 시야가 좁았겠나.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네. 귀양이란 정치세가 약하면 언제나 갈 수 있는 것이지.

귀양 간 사람들이 정치세가 강해지거나 대의명분 싸움에서 이기면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게야.

남해는 중앙 정부에서 멀리 떨어 진 남해 바다의 중심이며 심심찮게 왜구들이 몰려오는 곳이 아닌가?

그래서 귀양 간 사람들이 이곳에 서 민심을 살피고 물산을 알아보는 한편 남해 사람들이 느끼는

한양과의 거리감은 어떠하며 왜구들의 침입은 어떻게 막을 것인지를 연구하라고 이곳을 택했다고 생각하네.

 

내 이야기가 너무 길었군. 내 자랑만 한 게 아닌지 몰라. 따라오시게

자네를 데리고 다시 한 번 남해를 구경시켜 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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