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부석사, 뜬 돌의 전설

맛깔 2011. 7. 10. 14:00

“사람은 남북이 있을 지 언 정 불법에는 남북이 있을 리 없습니다.“ 홍인대사의 물음에 대한 혜능대사의 대답이다. 홍인대사는 그를 찾아 와 도를 청하는 혜능이 법기임을 알아보고 짐짓 그를 떠보고자 ”너는 북쪽 오랑캐가 아니냐. 오랑캐에게 불법이 무슨 소용이냐“라고 말했던 것이다. 혜능은 말하자면 차이는 있을 지 언 정 차별은 있을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내 안에 불성 있고 불법 두루 미치니 차별이 없고 너와 나란 사람과 이런 저런 사물이 있으니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소백산 부석사 일주문에는 ‘태백산부석사’ 란 현판이 앞에 달려 있고 뒤로는 ‘해동화엄종찰’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태백산과 해동이란 한국의 산과 중국에서 본 동쪽 바다 건너 지역을 말함이니 이는 곧 차이이며 화엄과 ‘사’와 ‘찰’이 합쳐 ‘사찰’이라 함은 부처님의 화엄사상과 사부대중이 사는 곳인 사찰에 진리의 법이 차별 없이 존재함을 말한 것이다.

 

 

일주문은 기둥 하나가 있는 문이란 뜻인데 두 기둥을 세워 놓고 일주문이라 한다.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바 몸과 마음, 둘로써 일심으로 닦아 진리를 얻으라는 말 같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서 일주문을 들어선다.  길은 오르막으로 사천왕사가 있는 곳까지 쭉 벋어있다. 6월 초의 날씨답게 덥지 않은 듯 하면서도 움직이면 땀이 배어난다.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이 모두 실상이 아니듯 나무 그늘에서는 하나도 덥지 아니 하다. 자신이 느낀 것을 실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시방삼세의 공간과 시간을 통하여 오로지 그만의 주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탄생 이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만의 눈과 귀로 보고 들었으며 그만의 머리로 생각하였을까? 그래서 시공의 분별에 따라 사람 수만큼의 세계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늘 왕의 뜻을 지닌 ‘천왕문’ 현판이 달린 사천왕사는 계단위에 있다. 계단 밑에서 치어다보니 계단수가 얼마 되지 않으나 계단 높이가 높고 가팔라 아득한 저곳처럼 보였다. 인터넷의 영향일까? 아니면 작가의 예리한 시각이 찾아서일까? 사진작가들은 천왕문 축대 오른쪽으로 다가가 천왕문을 바라보며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초보인 듯 아닌 듯 한 필자도 슬그머니 그들 틈에 끼여 사진을 찍었다. 눈이 있으되 제대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니 초보가 맞고 사진 찍은 연한이 오래되고 매체에서 인정을 두어 차례 받았으니 초보가 아니다. 

 

 

여행 작가가 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신인 사천왕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사천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공부에 마가 없고 살아가는데 오는 어려움을 물리쳐 주기를 사천왕에게 기원하는 것일까? 진지한 그의 모습에 사진 찍기가 부담스럽지만 기록에 충실한 자 셔터를 누를지어다. 

 

 

박윤희 문화해설사가 나와 부석사 곳곳을 상세히 설명해준다. 문화해설사는 지역, 관광, 문화 또는 역사 유적 등을 해설하는 사람들이다. 우스개 말로 동네 개들도 자기 동네에서는 반을 접고 들어간다는데 전문가가 아닌 이상 다른 지역이나 유적지를 탐방하면 그냥 휘 둘러보고 나오기 십상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해설사는 그곳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전해 줄 뿐 아니라 유지 보수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 사람들에게 축복 있으라.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부석사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책들을 다시 펼쳐보고 기억을 되살려야 하나 그렇게 한들 이들 대가의 글에 무엇을 더해 부석사를 더욱 빛낼 수 있으랴. 오히려 이 분들의 명품 해설에 군더기가 될 것이며 누를 끼칠 뿐이다.  

그래서 부석사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려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명문만을 읽어야 한다면 이 세상의 글은 많지 않을 것이고 명품만을 고집한다면 무엇을 가질 것이며 명문가만 챙긴다면 살아남을 집안이 얼마나 되겠는가? 명문은 졸필이 있기 때문에 돋보이고 미인은 보통 사람들이 있어 더욱 그 미모가 빛난다. 천하의 일미만이 삶을 영위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보리밥과 산채 일 망정 입맛을 돋울 수가 있고 평상의 밥과 반찬이 건강을 유지하고 살아가는데는 더 큰 보탬이 된다. 매일의 산해진미는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위대함은 평범함 위에 세워지는 법이다. 하여 박 문화해설사의 식견과 저의 소박한 안목이 합쳐지면 또 다른 시야로 부석사를 바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수첩을 꺼내 든다. 

 

 

박 해설사는 석등의 화창을 통해 공민왕이 쓴 無量壽殿(무량수전)이라는 한자가 보인다고 알려준다. 일행은 선생님 말을 잘 듣는 초등학생들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간다. 조그만 믿음의 불씨도 종국에는 한량없는 세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석등의 창을 통해 나타내는 것일게다.태초의 원시인들에게 어두운 밤은 큰 공포였을 것이다. 역사서에는 대낮에 해가 사라지는 일식도 세상의 종말처럼 보여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삶은 얼마나 고달프고 인생이란 밭은 얼마나 척박한 것인가. 사람들은 어둠에 빠져 미망에서 헤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 주위를 밝혀주는 불빛이 있다면 공포를 없애고 목적지로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석등에는 미망에 빠진 중생들을 인도해 준다는 뜻이 들어 있을 것이다. “중생들아 법을 지렛대 삼아 수행하여라. 법이란 석등의 불빛과 같다. 네 마음의 불을 밝히되 정성을 다하거라.” 부처님으로부터 수마등광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를 얻은 가난한 노파의 ‘빈자일등’이 떠올랐다.

 

 

 박 해설사는 “영주는 천년의 불교와 육백년의 유교정신이 살아 있는 도시입니다.”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 영주의 택시 창 새시에는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져 있고 그 택시의 기사들은 불자들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私學)기관인 소수서원이 있어 유교 정신이 살아 있는 도시라 했고 의상대사가 화엄의 가르침을 펼친 곳이라 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부석사 현판은 명필가였던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인데 명필이 아무 곳에서나 일필을 휘지 할 리 없다. 

 

 

법당에는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탓도 있었지만 사바세계에서 헤매는 중생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죄스러워 “부처님 다음에는 맑은 정신으로 오겠습니다.”고 했다. 다만 문 틈 사이로 부처님을 살짝 뵀다. 

법당 맞은 편 안양루에는 법고와 목어가 있는데 물고기는 항상 눈을 떠 있으니 물고기처럼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뜻이다. 오른 위쪽에는 김삿갓이 이곳을 다녀가며 쓴 ‘부석사’란 시가 새겨져 있는데 시 일부를 보니 그의 천재성을 알겠다.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김삿갓은 저 구절로 안양루에서 본 부처님의 명호가 붙은 산의 경개를 알려주고 떠 있는 부석사 절 의미를 잘 나타내었다. 글 배운 유교 처사가 부처님의 거처를 잘도 표현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부석사의 세세한 것은 위 대가들의 책에 잘 나와 있으니 구태여 덧붙일 것은 없다. 다만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부석사의 창건 유래와 박 해설사가 들려 준 최근의 일화로 불법의 세계를 얘기하고 싶다.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학을 공부할 때 그를 사모하던 선묘라는 처녀가 있었다. 선묘는 의상대사가 신라로 돌아 올 때 용으로 변신하여 그를 수호해 왔다. 5년의 세월이 지나 마침내 의상대사가 봉황산에서 절을 창건할 터를 찾았는데 이곳에 도적들이 많아 선묘가 돌을 띄워 도적을 물리쳤고 이 돌이 내려앉은 곳에 의상대사가 절을 짓고 ‘뜬 돌 절’ 즉 부석사라 이름지었다. 그때 내려앉았던 바위에 ‘부석’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일제시대 때 뜬 돌을 확인하기 위해 실을 부석바위에 감았는데 걸리는 곳이 없었으니 돌이 떠 있다고 믿는다. 

 

 

용은 불법의 수호신으로 의상대사가 화엄을 신라로 전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는 마치 삼장법사가 천축으로부터 당나라에 법을 가지고 올 때 손오공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바른 마음으로 지극 정성으로 빌면 도움을 준다는 하늘의 보살핌을 설화로 나타낸 것이리라. 설화라고 모두 지어낸 것일까. 설화는 현재까지의 과학과 상식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될 따름이다. 진실이라는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900세가 넘게 살았다고 한 것을 진정한 신자라면 믿겠지만 현재의 과학은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중생들아 열심히 착한 마음으로 진리를 찾는데 정성을 다하여라. 그러면 하늘이 도와준다.”는 뜻을 이처럼 나타낸 것이 아닐까? 

 

 

박 해설사의 독일에 있는 이모 할머니가 93세인데 이 분은 어린아이처럼 맑은 마음으로 기도를 하신다며 그는 이를 윤회 현상의 하나로 여긴다고 한다. 오고 가며 또 다시 오고 어린 아이와 어른을 거쳐 또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가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윤회와 인과응보는 불교 정신의 핵심이다. 오고 감 속에 뿌린대로 거두는 것을 생각하면 인생은 얼마나 공평하며 살 맛이 있는 것인가. 나그네는 '삶에 고통받는 자, 지난 일을 되새겨 보고 인생이 즐거운 자, 미래를 대비하자'며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