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절살이(템블스테이)의 요람, 김천 직지사 (2)

맛깔 2011. 6. 30. 08:18

 

저녁 공양을 하면서 한 톨의 밥도 남기면 안 된다는 말에 어림짐작으로 밥을 많이 푼 출가자들이 억지로 먹으면서 힘들어했다. 어림하지 말고 정확하게 아끼며 살자는 것이다. 불교의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 단지 중생들만 그 뜻을 모를 뿐이다. 그러니 눈 밝은 스승이 이끄는 대로 가면 된다.

 

 

공양 후 잠시 쉬었다가 108배 시간이었다. 간혹, 종교나 건강상의 이유로 108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SBS에서 방송한 108배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필자 역시 108배를 권한 친구가 있었지만 원체 게으른데다가 무릎에 무리가 간다는 얘기를 핑계 삼아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108번을 어떻게 엎드렸다 일어설까?

 

 

몸 가는데 마음 가고 마음 가는데 몸 따라 간다고 불교는 몸과 마음을 함께 중요하게 생각한다. 둘은 따로 그러나 함께 하는 것이다. 108배는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며 포용한다는 정신이 들어있다. 108배 방송과 후에 여러 참고자료를 보니 108배를 하면 뇌 계발과 집중력 향상은 물론 육신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내면 성찰 및 감정조절에 좋고 스트레스 대처능력도 키운다고 한다.

 

 

불교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부처님은 고해에 빠진 중생을 불쌍히 여기사 이 땅에 오셨는데 미혹한 중생은 부처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헤매었다. 부처님은 정법안장의 바른 법을 중생에게 일러주면서 이를 깨닫는 방법으로 선과 108배를 알려 주었다. 불교는 즐거움의 종교가 아니다. 욕망을 끊는 종교다. 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부와 귀함을 멀리하면서까지 수행을 하는 종교다. 외로움과 고통에 뼈가 시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경을 등불삼아 수행을 해라.”고 하셨다. “수행에는 선으로 정신을 모으고 108배로 건강을 뒷받침해라.”고도 하셨을 것 같다. 108배를 하고 MRI로 뇌를 찍은 사진을 보니 뇌의 인내하는 부위가 운동선수들보다 더 발달하였기 때문에 욕망을 끊고 정신을 모으기 위해서는 108배가 좋은 것이다. 또 사진에는 무릎 부위의 온도가 올라가고 가슴과 이마 부위의 온도는 내려간 것으로 나타나 수승화강에도 좋은 것이다. 신장의 수 기운과 심장의 화 기운이 원활하게 몸을 도는 수승화강이 건강의 지름길이니까. 몇 천 년 전, 부처님이 말씀하시고 공부하신 방법이 과학으로 증명됐다.

 

 

이 사실을 알고 108배를 하니 힘든 것이 없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다. 아마 모든 종교에는 이런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직접 해보면 느낄 수 있고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따라 온 가장 어린 출가자 진현정(서울봉은초등학교 6년)도 열심히 108배를 하여 어른들의 귀염을 받았다. 무더위에 108배를 마치니 출가자들이 땀으로 범벅이 된 듯 했지만 외려 시원했다.

 

 

노폐물과 기화 현상 등의 과학을 따지지 말고 정서적으로 얘기하자. 해 냈다는 성취감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이다. 108배 후 그 자리에 앉아 마신 생강차의 맛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 108배의 덕도 있었겠지만 정말로 잘 끓인 생강차임에 틀림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많은 출가자들이 한 잔 씩 더 청하는 바람에 반장을 맡아 큰 주전자로 일일이 따라 준 출가자 아가씨의 팔이 걱정되었다.

 

 

출가자들은 두 손을 단전에 모으는 차수에 묵언으로 만덕전으로 돌아왔다. ‘묵언과 차수를 하라’고 하는 것은 행동과 말을 삼가라는 뜻 일게다. 어느 공양주의 보시로 지은 만덕전은 무더위에도 시원했다. ‘빈자일등이라고 부처님께 바친 가난한 노파의 등불만이 세찬 바람에도 꺼지지 않았다는데 그 노파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며 만덕전을 돌아보았다.

 

 

9시에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곧 잠에 곯아떨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잠을 청하느라 제법 뒤척이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 날 푹 잔 사람은 출가예비자고 뒤척인 사람은 환속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우스개를 했다.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자식들이 있는 사람들은 출가하기 어려울 법 하다. 잠을 푹 잤지만 이런 이유를 대며 환속대열에 끼였다.

 

 

새벽 3시, 새벽 예불을 준비하느라 목탁소리가 들렸다. 몸이 불편한 몇 분을 제외하고 모두 벌떡 일어났다. 60 - 70대 노인들의 행동도 재빨랐다. 마음이 동하니까 행동도 따라 온다. 설법전에서 간단히 인원 점검을 하고 대웅전 앞 범종각에 모였다. 목어, 법고, 운판, 범종을 불전사물이라고 하는데 스님은 이를 치면서 모든 중생과 더불어 일시에 성불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천직지공원까지 새벽 숲을 거닐며 명상에 잠겼다. 캄캄한 새벽에 아무런 말도 없이 긴 행렬을 이어가며 생각에 빠졌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가? 삶은 무엇이며 죽음은 어떠한가? 마음자리는 어디에 있으며 몸의 주인은 누구인지? 미혹한 중생은 답을 찾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끝없이 생각을 이어갔다.

 

 

발우공양을 했다. 발우는 부처나 비구가 지니고 있는 밥그릇이다. 발우 공양으로 4가지 공덕이 있으니 한 솥밥과 반찬으로 공평하게 나눠 한 곳에서 한 톨의 밥도 남김없이 먹고 설거지 한 물마저 마시니 청결, 평등, 환경, 화합이었다. 이런 이유로 산 중 처소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없었다. 처음 발우공양을 한 출가자들은 그릇을 헹군 물에 고춧가루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 마실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마음의 조화에 달렸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108배로 알이 배긴 다리를 풀어주기 위해 명적암을 다녀왔다. 스님들의 일상사는 많은 경우, 군 훈련병의 일과와 닮았다. 긴장하고 항상 깨어있으며 근검절약하고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랬다. 많은 사람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이 만큼 효율적인 제도는 없을 것이다.

 

조인스 파워블로그 강춘 선생이 “중 노릇 하는 거 쉬운 일 아니네요”하니 덕천 스님이 “‘시골에 가 농사나 짓지’와 ‘절에 들어가 중노릇 한다’는 거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세요”라고 한다. 모두들 그 소리에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2002년부터 시작된 김천직지사 템플스테이는 1박2일, 2박3일 코스가 있으며 종교불문하고 매년 3, 4천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다.

 

생각을 그쳐 더 큰 생각을 할 수 있고

행함을 그쳐 더 큰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눈 밝은 자 찾고

귀 밝은 자 들을 수 있는 배움의 터가 템플스테이다.


글 하춘도 / 월간중앙 2010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