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육수를 넣고 끓인 김치 찜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맛있어.” 미식가 막내 딸 얘기다. ‘맛있어’에 잠깐 머물러서 미소 짓고 곧 육수에 방점을 찍는다. “알겠다. 앞으로도 육수를 내 음식을 해달란 얘기지.” 육수를 끓이려면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무, 양파, 다시마, 멸치를 기본으로 버섯, 새우를 넣고 압력밥솥에 끓인다. 주말에 오는 애들을 위해 압력밥솥으로 끓인 페트병 하나 반의 육수를 된장국, 버섯 샤브샤브, 콩나물 국 등에 사용한다. 육수 유무에 따라 밍밍한 맛과 감칠 맛 나는 음식이 태어난다.
평소 술 잘 사고 밥값 잘 내는 개운궁 이상화 사장이 (사장은 아내이고 본인은 허드렛일 하는 돌쇠란다. 이참에 아내는 회장으로, 본인은 사장으로 승진시킴) “비 올 날씨니 몇 사람 모아서 한 잔 하러 오이소” 하며 전화를 했다. 어떤 날은 “날씨가 화창하니 한 잔 하러 오이소” 날이 궂어서도, 바람이 불어서도, 눈이 와서도 시시때때로 전화한다. 혹시 회장님과 한 판 해 그 분풀이로 술을 마시는 가 싶어 회장님 눈치를 살피니 전혀 그런 표정은 아니다. 휴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 그래도 페친 모임을 가지려고 했는데 잘됐다. 인원이 너무 많으면 영업에 방해되니 몇 명 모으려고 했는데 아뿔싸 요즘 선거철이니 모이면 시끄럽겠지. 그저 시 알고 예술에 조예 깊은 사람이 좋은데. 변방미인이야 멀리 있으니 오라고 할 수도 없고. 고마움의 뜻으로 아내 몰래 꼬불쳐 둔 꿀 한 병을 들고 혼자 가야겠다.
대개 밑반찬이 맛있으면 음식이 맛있는 편이란다. 감식가에 가까운 미식가 평이다. 개운궁의 밑반찬은 정갈하다. 한결같은 맛이다. 밑반찬만 가지고도 한 그릇 뚝딱하겠다. 그럼 개운궁은 뭐 먹고 사나? 이 모든 것이 찬모 솜씨다. 김치도 매년 직접 담아서 묵은지 맛도 좋다.
시원한 성격의 이 사장이 “능이버섯전골하고 막걸리 한 잔 합시다.”라고 운을 띄운다. 능이향이 일품이지. 입에 착 감기는 국물 맛은 어떠하고? “국물 맛이 시원하죠?” 라고 객이 물으니 “육수 우리는데 공이 많이 들어갑니다.”라는 주인장 대답.
오리와 닭에 들어가는 육수는 황기, 감초, 구지뽕, 엄나무와 비밀 약재를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로 푹 끓여서 능이버섯 삶은 물을 넣고 또 불을 때 끓여내고 자식에게만 물려줄 100년 전통 비법으로 끓여낸다. 또 이 식당의 인기 메뉴 버섯전골, 두부전골에 사용하는 육수는 해산물, 양파, 무, 명태, 게, 대파와 또 비밀 약재를 넣고 끓인다. 한때 국내에서 몇 손가락 들 정도의 대리점을 운영하던 이 사장이라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넣는다. 재료를 아끼면 맛이 덜하단다.
“말나온 김에 창고 구경합시다.” 라니 이 사장이 활짝 웃더니 “갑시다. 보물창고로.”하며 안내한다. 아이고 이게 음식점 창고냐 한약방 창고가? 황기가 노란 박스에 채로 쌓여있다. 감초, 나물, 대추, 시래기, 구지뽕 등도 박스에 예쁘게 담겨있다. 놀란 가슴 진정하며 사진 한 컷.
식당에서 막걸리를 한 잔하고 육수 끓일 때의 정성을 생각하며 전골찌개 국물을 입에 떠 넣으니 감동이다. 몰라서 그렇지 육수 우릴 때의 정성은 말로 다 못한다. 나는 애들을 생각하며 압력밥솥에 육수재료를 넣고 추가 돌고 몇 분 지나서 불을 끄면 되지만 개운궁은 고객을 위해 장작불 가마솥으로 끓이면서 오랜 시간 불조절과 재료를 가늠하면서 끓이니 맛은 고객 입으로 노고는 이 사장 몫으로.
“닭과 오리는 가마솥에서 삶아야 맛있죠. 압력밥솥에 비해 식감이 쫄깃쫄깃해 고객들이 좋아합니다.” 이럴 수는 없다. 이렇게 좋은 안주인데도 벌써 술에 취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밤새 마시고 또 마시련만 고작 막걸리 2병에 취하다니. 마음이 약해져서 몸이 약해졌나? 찌개국물 믿고 제 속도를 잊고 마셔서 그런가?
밤이라면 맑은 달에 보고 싶은 얼굴이라도 그려보련만 초저녁이라 자전거 끌고 왔다.
#상주맛집
#개운궁
#경상북도 상주시 개운동 21-13
#전화:054-536-9090
'맛난 것 맛난 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의전서 사람들(1) (0) | 2020.11.05 |
---|---|
백강정(3) (0) | 2020.11.05 |
어머니 손맛의 사벌기사식당 (0) | 2018.02.27 |
그릇 탐(貪) (0) | 2018.02.26 |
성의 없는 불고기, 좋은 고기 준비하고 양념만 잘하면 대박 음식 (0) | 2017.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