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난 것 맛난 집

그릇 탐(貪)

맛깔 2018. 2. 26. 16:13

그릇 탐(貪)


식탐(食貪)이 ‘음식을 몹시 탐냄’이니 그릇 탐이면 ‘그릇을 광적으로 탐내는 마음’이겠지.

어렸을 때 밥상에 앉으면 불안했다. 선친은 스트레스를 밥상머리에서 푸셨다.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할아버지와 함께 귀국한 다음 해 당신 부친을 돌림병으로 여의고 험한 세파에 부대끼며 살아 오신 부친이셨다.

영리하고 손재주가 좋으셨던 선친은 독서를 좋아하셨던 덕에 독학으로 한글을 깨치셨다. 그 덕에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 신문을 읽었다. 어린 시절에 읽은 것이 습관이 돼 아직까지 읽는 것을 좋아하니 내가 요즘 들어 가장 고마워하는 일이다.

지금은 이해가 된다. 위로받을 친척이 별로 없고 동생과 어머니를 건사하기 위해 고작 13~14세의 나이로 양복점 시다(어감이 생생해서 쓴다.)부터 안 해 본 일이 없고 안 해 본 고생이 없었다고 하셨다.

친구를 사귈 줄도 술을 마실 줄도 몰라 오로지 좋아하는 담배와 때로 당신 아내와 어머니를 긴장하게 하셨던 바람으로 스트레스를 푸셨다. 할머니는 무조건 며느리 편이었다. 당신 아들보다 더 좋아하셨다. 그러니 밥상머리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밖에.

부친이 험한 말을 하면 밥맛이 있겠는가? 지금은 내가 탐식가지만 당시에는 입이 짧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러셨다. “너는 입이 짧아 계란도 안 먹었어.” 아주 귀한 계란을. 대신 친구나 남의 집에만 가면 밥을 두 그릇씩 먹었다.

그래서일까? 어릴 때부터 신문이나 광고지에 컵과 그릇 광고가 나오면 유심히 봤다. 대개 가족이 단란한 웃음을 지으며 음료와 음식을 나눠 먹는 사진이었다. 나는 용돈을 아껴 그릇을 사러 다녔다. 그릇은 비싸니 주로 컵을 샀다. 가족 수대로 사기에는 돈이 모자라 몇 개씩 샀다.

그릇 가게 아저씨와 이웃 사람이 이상하게 여겼다. “꼬마가 그릇을 사다니?”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다. “이 컵으로 물을 드세요.” 마치 행복이 컵에 있는 듯 말했다. 의식적으로 그릇을 구입해 가정 행복을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행복한 사진을 보고 본능적으로 손과 마음이 갔을 것이다. 작년 심리상담선생님과 얘기할 때 그릇을 사던 불쌍한 꼬마 생각이 났다.

요즘도 그릇을 좋아한다. 그릇을 보면 가슴이 꿍꽝거린다. 마냥 흥분된다. 요즘에는 전골냄비에 눈길이 꽂혀있다. 전골냄비에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면 무지개 빛 행복이 눈에 보이는 듯.

생일을 맞아 애들이 준 용돈으로 전골냄비를 샀다. 마음에 드는 전골냄비를 구입하려고 유기그릇, 국내 및 아마존사이트 등을 뒤지고 여러 곳의 전골 전문 식당을 탐방했다. 전골 냄비는 폭과 깊이가 적당해야 하고 밑지름이 짧고 윗지름은 넓은 타원형이라야 먹을 때 편하다. 그러다 딱 마음에 드는 전골냄비를 발견했다. 한일에서 나온 KIEN이다. 처음에 봤을 때 심장이 떨릴 정도였다.

연마제를 닦고 깨끗이 말려 내 방 서랍에 감춰두었다. 애들이 오면 내 사랑 전골냄비를 꺼내 해물샤부샤부를 할테다. 두 어 달 전, 다른 그릇에 해준 버섯샤부샤부를 잘 먹었던 애들이다. 간혹 해물샤부샤부를 해준다고 슬쩍 말해도 별 반응이 없네. 섭섭하게.

얘들아!
이번 주 토요일에 꼭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