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사물놀이의 꽃, 상쇠 최영암

맛깔 2012. 11. 26. 14:41

지금이야 사물놀이패의 흥겨운 가락이 지구촌을 뒤덮고 있지만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미국의 그 유명한

카네기 홀에 가서 처음 공연을 할 때 관장이 이렇게 말하더란다. “사물놀이패 단, 네 사람이 조그만 악기

단, 네 개로 한 시간 반 동안 이 넓은 홀의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나요?

 

사진:범최, 디자인:이송, 글:하춘도

 

다른 나라에서는 몇 십 명의 오케스트라가 와서 연주를 합니다” 김덕수 패가 사물놀이를 한 10분 정도

펼치니 청중들의 어깨가 들썩들썩, 고개가 끄덕끄덕, 엉덩이가 씰룩씰룩 난리가 났다.

한 판이 끝날 때마다 청중들은 한국에서 온 북, 꽹과리, 장구, 징 소리에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복숭아 밭 1500평을 일구는 최영암 원예농협 조합원은 이런 사물놀이의 흥겨운 가락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다. 돌아가신 부친 최상봉이 마을의 유명한 상쇠였으니까. 농사를 짓는 짬짬이 마을 사람들과

사물놀이를 하던 부친은 대보름 때 지신밟기로 흥겨움의 꼭대기에 올랐다.

 

동네를 돌며 지신을 밟아 가가호호 쌀 한 공기, 좀 잘살면 다섯 되, 더 잘 살면 한 말의 쌀을 받아

고무신 사고 악기 마련하고 남는 것으로 동네제사 기금을 모았다. 정으로 살던 살갑던 시절 얘기다.  

 

최영암은 부친이 입에서 뱉는 소리 한 가락 두 가락을 들어나갔다. 입의 소리, 구음. 학교 졸업 후

대처로 갔다 89년 귀농을 했는데 뭔가 허전했다. 귓가에는 들릴 듯 말 듯 무엇이 맴도는데 잡을 수 없었다.

유년의 기억은 몸에 남고 노년의 기억은 지식으로 남는 법. 91년 ‘상주삼백사랑청년회’에서 우리 문화를

지키자며 회원 모집광고를 해 찾아 가보니 반가운 얼굴 김봉기, 정용운, 최병수 등이 있었다.

 

몸의 기억이 살아나 의기투합 놀이패 ‘신명’을 만들었다. 소문을 듣고 좋은 스승 김덕수를 찾았다.

그도 아직은 이름이 덜 알려져 부여 폐교에 ‘한울림’이란 사물놀이패를 만들어 사람들이 오면 전수해 줄 때였다.

김덕수 단장으로부터 신명 단원들과 함께 열흘을 먹고 자며 체계적으로 우리가락의 이론과 연주에 심취했다.

 

 

- 지신밟기 -

 

어허루 지신아 지신아 지신아

경상도라 상주 땅을 둘러보니

좌청룡은 우백호, 우백호는 좌청룡

갑장산을 앞에 두고 낙동강을 둘렀으니

이곳이 명당일세 지신 지신 지신아

 

(중략)

 

 

최영암 상쇠는 행사에 불려 다니며 흥겨운 가락을 펼치는 도중에 우리 사설을 채집하기 위해 공을 쏟았다.

지신밟기도 그 중의 하난데 최 상쇠가 완창 할 수 있는 사설은 마을굿, 성주굿 등 다섯 가지 밖에 되지

않는다며 부친 생전에 다 채록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한다.  

 

가을걷이를 하는 농부를 뒤로 하고 장구채를 든 상쇠 최영암의 입에서 알듯 말듯 들릴 듯 말듯

사설 한 자락이 흘러나왔다. “어허루 지신아 지신아 지신아” 눈길 아득한 곳에 부친의 신명나는

모습이 보이는 듯 말듯.  (2009년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