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과 상주시장 부인 김인호 여사의 음식 이야기

맛깔 2012. 12. 4. 11:44

궁중주방상궁들에게만 전수돼 오던 우리나라 궁중음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궁중 밖으로 알린 분이 고 황혜성 님이다. 그는 조선시대 마지막 주방상궁이던 한희순 상궁으로부터 낙선재 소주방에서 1944년부터 30년간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았다.

 

숙명여대, 한양대, 명지대, 성균관대학에서 가정학 교수와 대학장을 역임한 황 교수는 궁중음식을 계량화하고 조리법을 정리하여 궁중음식을 학문적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또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을 설립하여 실제 조리법을 전수하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리하여 궁중음식무형문화재 1대 한희순 상궁에 이어 어머니이신 황혜성 교수가 2대로 지정되었으며 이 계보는 3대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으로 넘어왔다.

 

 

한 원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김대중 주최만찬, 2005 부산 APEC 영부인 주최 오찬 등 국가행사의 음식자문 및 지도, 아시아나 항공 기내식 개발, 자문을 통해 궁중음식을 상품화하고 국제화하는데 많은 열의를 쏟았다. 특히 한류드라마의 중심이 된 ‘대장금’에서 궁중음식 자문을 맡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궁중음식 시연, 시식 및 강연을 하므로 한국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중추적역활을 하였다.

 

상주시장 부인 김인호 여사(명실상주봉사단장)가 경기도 관광홍보대사(2005),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2007)로 궁중음식을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해 온 한복려 원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시 창덕궁 옆에 있는 궁중음식연구원을 찾은 날은 매서운 강추위가 몰아치던 지난 18일이었다.)

 

 

한 : 어서 오십시오. 추운데 먼 길 오셨습니다.

김 :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좋은 얘기를 듣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만나 뵙기 위해 전화를 자주 드렸으나

     한 원장께서 TV, 방송 등 인터뷰로 바빠 이제 왔습니다.

한 : 그러셨군요. 행사장에 가거나 현지에서는 자주 만나지만 일 때문에 시장 부인이 직접 찾아 온 경우는

      없었습니다. 찾아 올 만큼 궁금한 게 무엇인지요?

김 : 예 음식 얘기를 듣고 싶고 상주 특산물도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궁중음식연구원은 정성이 깃든 최상의

     음식을 만들고 연구하는 곳이라 궁중음식과 상주를 대표하는 음식을 연결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음식에 상주 특산물을 이용하면 상주 특산물의 격이 한층 더 올라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 상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곶감으로 이것을 가공한 음식이 있는데 나중에 말씀드리고요 그렇죠 정성이

     깃들고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에 상주 특산물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상주 특산물을 찾게 되겠지요.

김 : 예 그래서 시식용으로 상주특산품 몇 가지를 가져왔습니다. 대통령 상을 받은 아자개 쌀, 명실상감 한우,

     곶감 등입니다. 모두 전국적인 명성이 있는 상주 특산물입니다.

 

한 : 하하 상주 특산품 영업을 하러 오셨군요. 시장부인께서 특산품을 팔러 다니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상주 쌀과 쇠고기가 좋다는 얘기는 얼핏 들었습니다만 한 번 사용해 보겠다는 생각는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전국에 좋다는 쌀과 쇠고기가 지천으로 깔려있고 많은 홍보를 하기 때문입니다. 먹어보고

     정말 좋다면 궁중음식에 꼭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궁중음식은 왕이 젓수시는(‘드신다’는 궁중 용어)

     것이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마련합니다. 정성스런 마음은 우선 최고의 식재료를 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궁중음식에는 최고의 재료만 사용합니다.

 

 

(명절을 앞두고 한 원장께서 아자개 쌀과 명실상감 한우가 정말 맛이 좋았다며 선물용과 연구원에서 사용하려고 쌀 150킬로그램, 곶감 12상자를 구입하였고 상주축협으로부터 명실상감 한우를 지속적으로 구입하여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사용하기로 했다. 한 원장이 선물을 드리는 분은 주로 음식과 관련한 분들이 많고 음식에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라 상주 음식에 대한 홍보가 많이 될 것이다.)

 

 

김 : 소개는 하되 강매는 하지 않습니다. (두 분 사이에 잠시 웃음꽃이 피었다.) 

 

한 : 상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없다고들 합니다만 의외로 고서 등에 보면 상주에서 음식에 관한 책들이

     자주 발견되곤 합니다. 옛날에는 책이 귀해 필사를 많이 하였습니다. 최근에 구한 책을 보면 1916년

     상주면장 박정한(朴挺漢) 명의로 발행한 납입고지서 이면에 ‘규합총서’란 옛 요리책을 필사한 것이 있습니다.

김 : 바로 이 것이군요. 한 원장께서 귀한 책을 구하셨군요. (책을 보여줘 사진을 찍었다.)

 

한 : 우리나라 최초로 식품에 관한 책으로 일컬어지는 ‘산가요록’은 조선시대 어의였던 전순의가 지었던 것으로

      총 185종의 조리법이 수록돼 있는데 ‘양양’판본과 ‘상주’판본이 있다고 합니다. 양양판본은 번역이 다 됐지만

     상주 판본은 소장자가 아직 내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상주에서 발간됐다는 고서가 자주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아마 서고(書庫)가 상주 부근에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합니다만 그것은 관련 분야 학자들의

     몫입니다. 상주에도 전통주가 있나요?

김 : 아니 지정돼지 않았습니다만 은자골 막걸리가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한 : 술의 유래와 문헌이 뒷받침 되면 전통주로 지정될 수 있습니다. 시의전서는 규합총서의 영향을 받은

     책입니다. 시의전서에 보면 술 담그는 법이 있는데 상주에는 고택이 많아 이런 술 담그는 법을 적어

    전승돼오는 가양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발굴하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 : 한 원장께서 상주와 인연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 : 어머니인 고 황혜성 교수와 저는 2대에 걸쳐 상주와 인연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배움에 열성이셔서

     음식을 잘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어디고 찾아가셨습니다. 처음에는 대가들이 잘 가르쳐 주지 않잖아요.

     한희순 상궁도 그랬습니다. 거의 7개월을 꾸준히 찾아갔더니 그제서야 마음을 여시고 궁중음식에 관해 얘기를 

     해주기 시작하셨다고 하더군요.

김 : 그저 쉽게 배울 일이 아니죠. 더군다나 음식은 말입니다.

 

 

한 : 화북 관음정사에 계시는 정관스님이 어느 절에 계실 때 사찰음식을 잘 한다는 소문이 나 어머니께서

     정관스님을 여러 번 찾았습니다. 정관스님이 관음정사를 지을 때 어머니께서 함께 힘을 보탰습니다.

     저도 관음정사를 자주 찾습니다. 상주대학교 김귀영 교수님의 초청을 받아 상주대학교에서 강연회를 한 적도

     있습니다.

김 : 아까 상주음식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 있는지요?

 

 

한 : 석탄병(惜呑餠)이라고 쌀가루와 감가루를 섞어 계핏가루와 잣·밤·대추 등으로 맛을 낸 전통 떡입니다.

     석탄병은 맛이 달고 향이 좋아 '삼키기가 아깝다'고 하여 붙은 이름인데 임금의 생신이나 고관대작의 집에서

     만들던 귀한 음식으로 《진찬의궤(進饌儀軌)》에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김 : 상주에 가면 한 번 알아보고 재현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 아마 상주에도 특산물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드는 방법은 거의 다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비법이라 하여

     일부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거나 대중화되지 않은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어떤 음식이든 하루아침에 만들어

     진 것은 없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고 많은 세월을 지나 하나의 음식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상주는 이런 음식을 대중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김 : 어떤 방법이 있는지요?

 

한 : 음식을 만들고 시식하고 잘잘못에 대한 것을 피드백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가령 휴게실 한 켠에

      상주전통음식점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고칠 점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있겠지요.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공을 인정하여 지원의 기한과 범위를 정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김 : 궁중음식전문점 ‘궁연’과 ‘지화자’도 피드백 역할을 하는군요.

 

한 : 음식은 문화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외딴 무인도에서 혼자서 먹으면 무슨 맛이 있겠습니까?

     사람과 어울려 먹는 음식이 정말 좋은 음식 아니겠습니까? 상주시 발간 책자에 ‘경상감사 도임순력 행차’와

     ‘정기룡장군 상주성 탈환’이 있더군요. 두 행사의 음식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순력행차’는

     부임지의 지방민들이 새로운 감사가 선정을 베풀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처음 감사를 맞이하는 긴장된

     마음으로 갖가지 음식을 정성스럽게 장만하였을 것입니다. 반면 ‘상주성 탈환’에는 상주민이 목숨을 걸고

     힘을 합해 왜적을 물리쳤으니 생명을 건지고 나라를 건진 기쁨을 나타내는 음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술과 거친 음식들, 고기 등이 맞지 않을까요? 기로연은 조선시대에 70세 이상의 원로 문신들을

     위로하고 예우하기 위해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국가에서 베푼 잔치입니다. 공직 퇴직자와 힘을 모아

     기로연을 재연하여 음식상을 차리면 문화와 음식이 어우러지는 행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김 : 상주에는 뽕잎장아찌, 연잎지, 감장아찌 등이 있습니다. 이를 활용할 방법이 없는지요?

 

한 : 일본에는 지역 특산물이 있어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지요. 반면 우리나라는 지역적 특성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음식이 잘된다면 다른 곳에서도 우후죽순처럼 그 음식을 만드니 지역 고유의 향이

      없습니다. 저도 이런 것을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 : 음식을 만들 때 육신을 주고 간 생물을 위한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한 :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지요. 비록 인간을 위해 고기를 주고 갔지만 그것의 생명 역시 고귀한 것 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몸을 주고 간 생물을 위해 생각하라고 하셔서 음식을 장만하기 전 잠깐 묵념을 합니다.

김 : 상주는 토지가 넓고 비옥하여 산물이 질이 좋고 풍부합니다.

 

 

한 :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전 경기도로부터 초청을 받아 가니 유명 헤어디자이너에게 용역을 줘 창포로

     만든 샴푸를 만들었다더군요. 상주 특산물의 이용방법도 다양할 것입니다.

김 : 상주 음식 개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한 : 좀 전에 얘기했다시피 상주 특산물을 이용한 음식은 거의 다 개발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대중화시키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음식은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만 단축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김 : 어떤 것입니까?

 

 

한 : 음식개발을 문화개발프로젝트로 이름 짓고 프로젝트 수행을 해야 합니다. 고증 뒷받침 학계, 디자인

     개발, 기획, 조리, 홍보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모여 문화프로젝트를 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짧은

     시간에 대중화시키기 쉽습니다.

김 : 상주에는 상주아카데미가 있습니다. 오셔서 음식에 관한 강연을 좀 해주시죠.

 

한 : 예 기꺼이 가겠습니다. 시장 부인께서 지역 특산물 판매와 음식 개발을 위해 이렇게 먼 길을 오셨는데

     저도 보답을 해야지요. 반드시 갈테니 미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김 : 장시간 귀한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 김 여사의 열정에 놀랐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정리 : 하춘도) 2009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