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농부

백 년 거목을 키우는 변홍석 양묘인 (2-1)

맛깔 2013. 8. 23. 10:23

산을 구경하다 묘목을 내려 보니 성경의 한 구절이 저절로 툭 튀어나온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산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는 씨앗이 자연 발아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있지만 묘목으로 심어 자라는 것도 많다.

소나무, 산오리, 단풍나무 등 많은 나무들이 사람들 손을 거친 종자로써 번식한다. 그 종자의 크기가 커 봐야

1~2밀리미터 정도인데 나중에 10미터 20미터의 거목으로 자라니 5천 배 만 배로 크는 셈이다.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옛날에는 모래밭에 씨를 흩뿌려 심었지만 요즘에는 가로 세로 3센티미터의 양묘 포트에

씨앗 한 두 개를 손으로 일일이 심어 키우니 그 공이 대단치 아니하랴. 산에서 가로 세로 줄지어 자라는 나무들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심고 키우는 것이니 나무를 보면 심은 이의 노고를 숭배할지어다.

 

 

상주농원은 변홍석 옹(81세)이 55년 동안 운영해 오다 정부지정양묘대행생산업체로 지정받은 지

45년 정도 되는데 지정양묘대행생산업체란 정부에서 용역을 받아 묘목을 생산하는 곳으로 전국에 60개 밖에 없다.

55년의 세월은 상주농원 전신인 대양임업에서 전 주인 김동배 사장과 일하던 연수를 합친 것이다.  

 

 

변 옹은 연세에 비해 허리가 꼿꼿하고 청력도 좋아 건강이 60대 초반이나 다름없다. 안경을 꼈지만 안경이야

젊은이도 끼는 것이니 시비 걸 일이 아니다. “젊음의 비결이 따로 있나? 하루 종일 나무와 씨름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푸르러 지는 거지.” 변 옹의 말에 아들 변해광 상주시의원이 덧붙인다. “긍정적으로 사시니

그 또한 건강에 도움이 될 터입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와 믿음이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변홍석 옹을 보면 알 수 있다.

양조장을 하셨던 선친 변재명 덕에 변 옹은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자라서인지 여유가 있다. 뿐만 아니라

변 옹은 여든 넘은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는 부친의 말씀 한 마디를 되뇌면서 그 덕에 정신이 훌쩍 자랐다고 한다.

“내가 13~14세 무렵 이지 아마. 7남매 중 셋째였던 나와 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선친이 그러시는 거야.

홍석아 네 공부는 내가 시킬 테니 너는 동생들 공부를 책임져라.’ 지금 나이로 따지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1학년 쯤 되는 아이가 무슨 철이 있겠어? 그런데도 그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물끄러미 하늘로 얼굴을 돌리는 변 옹의 눈가에 그리움의 보석이 잠깐 보일 듯 말 듯 한다. 변 옹은 두 어깨에

훈장처럼 매달린 책임감 하나로 동생들 공부를 시키고 가정을 건사했을 게다.  

 

 

“25~6세 쯤 되었을 때 대양임업 김동배 사장 밑에서 월급 2천원 받고 일을 하게 되었어. 이 분이 나의 은인이야.

연도로 따지면 1958년 무렵이지. 이분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임업일을 해 능력도 있거니와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는 분이었어. 선친으로부터 들은 말씀도 있고 해서 그 분을 따라 다니면서 일을 배웠지.

 

씨앗 선별, 소독, 파종, 농약 살포 등 쉬운 일 이 없었어. 한 1~2년 열심히 따라다녔더니 현장 감독 일을 시켜.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묘목이 자라는 상판을 쓱 지나가면 문제점이 다 보였어. 그래서 경력도 별로 없고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감독 일을 맡은 모양이야. 현장 일이라는 것이 영양이 모자라면 영양분을 주고

병들 것 같으면 약을 치는 것인데 지금껏 양묘를 하면서 큰 실패는 없었지. 나무에 대한 안목이 생겨 그럴 것이야.

김동배 사장이 나를 참 예뻐했어. 나중에 그분에게 큰 은혜도 입게 돼.” 김동배 사장은 인감도장도

변홍석에게 맡겼다고 하니 젊은 날의 변홍석이 얼마나 믿음직한 인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변 옹은 열심히 배우고 눈썰미로 익혀 상당한 임업기술을 지니게 됐다. 그가 손을 대면 죽어 가는 나무도

산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아들 변해광 상주시의원이 자라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나무는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였다. 이 흔한 말도 변 옹이 하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곧 말을 실천하면서 살아 온 사람의 힘이다.  

 

 

양묘 일에 종사한 지 15년 쯤 지나 마흔 줄에 접어들었을 때 김동배 사장이 변 옹을 불렀다. “자네가 임업 일을 맡게.

나는 이제 은퇴하려고 하네.”  피붙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만을 보였을 따름인데 돈 한 푼 받지 않고 기업을 물려준다니 놀랄 일이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던

사위도 있어 그에게 줬더라도 됐을 법 한 일이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성실하게 일하던 쌀가게를 이어받아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기업가가 된 장면을 연상시킨다.

 

 

기업을 제대로 운영할 인물을 선정한 혜안과 재물을 베푼 덕으로 김동배 사장은 상주 지역에서는 큰 인물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다. 작은 이익에도 쉽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에게 가슴 뜨끔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