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농부

오미자 청을 생산하는 효소 전문가 이연희

맛깔 2013. 10. 8. 10:05

 

 

이연희 가삼농장 올담 대표

 

 

유명화가에게 이름 없는 화가가 말했다. “저는 사흘이면 그림을 그리는데 팔리기는 삼년 걸립니다.” 

유명 화가의 말 삼 년을 그리시오. 그러면 사흘 만에 팔릴 겁니다.”

 

 

올담 오미자 청

 

 

국내 최고 품질의 포도를 생산하는 상주 화동 백두대간 팔음산 자락에서 오미자와 포도를 생산하는 이연희 님은

여성 농부이자 오미자 청을 생산하는 발효효소전문가다. , 비장, 심장, 폐와 신장에 이로운 열매인 오미자는

시고 달고 쓰고 맵고 짠맛을 지닌 약용 식물이다.

 

 

올담

 

 

 

여성 농부 이연희의 인생은 쓰고 매운 삶으로부터 시작됐다. 수원 살던 이연희는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농촌

총각 장시철을 만나 우아한 전원생활을 꿈꾸며 상주로 시집왔다. 오자 말자 잘못된 만남이었던 것을 알았다. 

요즘은 귀촌도 많지만 당시는 모두 도시로 빠져 나가는 농촌 사람들이 태반이어서 드넓은 시골에 이연희의

말상대가 돼 줄 젊은 사람들이 없었다.  10여년 동안 외롭게 지내며 강아지와 벗하며 노는 버릇이 생겼고 우울증이 왔다.

  

 

올담의 유기농 오미자

 

 

이를 보다 못해 농업 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남편이 아내의 손을 잡고 농업기술센터의 생활개선회에 가입시켰다. 

농업 활동을 하다보면 친구도 사귀고 농촌일도 배우겠지 하는 심정에서였다. 이연희는 이곳에서 농사를 체계적으로

짓고 기록하는 방법과 훗날의 자산이 되는 사람들을 사귀게 된다.

 

 

 

밤을 잊은 농부들 

 

교육 과정에 따라 이연희는 영농일지를 겸해 가계부를 적었는데 영농일지 경시대회에서 상주시장상과 경북도지사 상을

수상하였다. 이연희는 이때 얻은 자심감을 바탕으로 더 큰 배움의 세계로 나가게 된다. 농수산식품부가 후원해 준

여성농업인을 위한 1년 기간의 비즈니스 교육 과정에 등록하게 된 것이다.

 

 

 

오미자 청의 원료가 되는 유기농 오미자 

 

그 전에 잠깐, 이연희의 인생에서 아주 맵고 쓴 시기를 얘기해야겠다. 이연희는 30대 후반 무렵 전신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밥숟가락을 들기도 힘들고 걷지도 못해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 다닐 정도였으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달콤한 죽음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암으로 죽은 친구의 아이들이 어렵사리

자라는 것을 보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내 자식은 내가 키워야겠다.”  

 

 

 

오미자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연희 대표와 장시철 부부

 

 

전국의 좋은 병원을 다 다녀도 낫지 않던 것이 마음을 다잡으니 신기하게도 몸이 조금씩 나아졌다. 이것을 계기로

이연희는 마음과 의지의 힘을 믿는다. 영동의 한의원에 갔더니 약에만 의지 말고 민간요법도 겸하라고 해 말을

따랐더니 엄청나게 몸이 좋아졌다. 걷지도 잘 못하던 사람이 마을 운동회 달리기에서 4명 중 2등을 했으니

동네 사람들이 명의라고 이 한의원을 부자로 만들어줬다.

 

몽이 아팠던 사람이니 건강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소비자들은 가격을 그에 걸맞게

쳐 주지 않았다. ‘안 되겠다 좋은 상품 소비자에게 직거래해야 겠다. 그러자면 알아야 면장을 하지.’

 

 

행복한 오미자 

 

남편은 아내의 비즈니스 교육을 반대했는데 1년 이라는 기간 동안 매달 3~4일 숙식교육을 하는 것이 그 이유의

하나라면 다른 교육과 달리 백 만원의 자기 부담금이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였다. 돈이 아까워서라 아니라

기존 관행은 교육은 무료였기 때문이다.

 

 

 

오미자 효소를 담기에 앞서 오미자를 선별하고 있다.

 

옹고집 이연희는 남편의 반대를 물리치고 교육을 받았는데 배울수록 뒤늦게 왔다는 안타까움이 샘솟았다. 

농촌 경영, 인터넷 교육, 선배농사 방문, 성공 사례 발표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서울대, 포항공대 등 우수

교수진으로부터 귀한 가르침을 받으며 나도 유명한 분들의 제자라는 자부심에 공부를 더욱 열심히 했다.

 

 오미자와 설탕을 켜켜이 넣으며 오미자를 담고 있다. 

 

 

교육을 통해 친구를 사귀고 여러 곳에 견학을 다니면서 이연희는 오미자 청 생산과 직거래 판매를 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오미자 청 생산 공장을 다니면서 좋은 자료들을 모으니 될 것 같았다.

 

완벽주의 이연희의 옹고집. 1년 과정을 수료하니 알 듯 모를 듯 했다. 전국 최고 품질의 오미자 청 생산을 목표로 한

이연희는 내친 김에 같은 교육을 한 해 더 받았더니 비즈니스 교육의 실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오미자 효소 탄생 5개월 전

 

 

교육을 마치자 때마침 경상북도에서 창업자금 1억 원의 지원 사업 공모가 있었다. 대상은 경상북도 농민이며

종목 관계없이 가공업에 한 할 것. 카이스트 박사과정에 있던 경북대학 시절 농활 왔던 빅정효, 이수환 씨에게

사업계획서를 기본을 부탁하고 나머지는 본인이 작성했다. 상주시에서는 막강한 경쟁자들이 있으니 떨어지면

기죽으니 나가지 말라고 했다.

 

심사 때 다른 사람들은 파워포인터로 발표했지만 이연희는 말로만 발표했다. 심사위원과의 질의 응답 시에

심사위원들이 계속해 물으며 미소를 지었다. 2년의 준비 과정과 견학을 다니고 직접 집에서 담기도 한 이연희의

경험이 워낙 생생해 다른 발표자들을 압도했다. 선정돼 받은 자금으로 HACCP에 준하는 시설로 가공 공장을

지었는데 이 과정에서 완벽한 시설을 갖추느라 본인이 부담한 금액이 상당했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이연희의

기쁨은 대단했다.

 

 

오미자 청을 병에 넣고 있다. 
 

 

올바른 품질을 담는 뜻에서 브랜드 이름이 올담의 공장은 시설 기준과 운용에 모범이라는 칭송을 들으며

상주시의 우수 방문 공장이 돼 수시로 사람들이 찾아와 감탄을 하고 돌아간다. 

 

이연희 사장의 옹고집 둘. 오미자 청을 생산하기 위해 발효효소관리자 약용식물관리자 자격증을 2년 동안

공부해 취득했는데 이 과정에서 옹기 발효가 좋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옹기 발효를 하려니 너무 고달프고

어렵다고 하면서 모두들 말렸다.

 

 

 


청송옹기 / 경북도 무형문화재 이무남 선생님 

 

무소의 뿔 같은 의지를 지닌 이연희 사장은 좋은 옹기를 찾아 경북도 무형문화재 이무남 옹이 만든

청송옹기 이 십 개를 천 만원 넘는 돈으로 구입해 여기에 오미자를 담았다. 보름에 한 번씩 옹기

밑바닥에 가라 않아 굳은 설탕을 저어주려면 장정 몇 사람이 일을 해야 할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이연희 사장의 고집을 이길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유기농 오미자 청을 생산하는 가삼농장 올담

 

 

 

보물같은 유기농 오미자

 

 

집에서 키우는 와송에 오미자를 섞어 마셔도 맛이 좋다.

 

   

이연희의 비장의 무기. 발효 효소를 공부하며 배운대로 전통방법으로 막걸리를 담았는데 숙성에만 25일이

걸리지만 보존기한이 거의 6개월을 간다는 막걸리의 맛은? 천하일미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