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물의 고장, 영양

맛깔 2014. 6. 11. 11:37

인물의 고장 영양

디미방 장계향, 삼불차 조지훈, 소설가 이문열

 

 

영양은 작은 고장이지만 인물 많기로는 다른 지역에 뒤지지 않는다. 문필봉이 우뚝 솟았고 사람을

빌지 않는다는 삼불차의 고장이어서인지 글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역사에 뛰어난 족적을 남긴 인물 또한 쉽게 헤아릴 수 없다.

영양 사람들은 인물을 추억하고 그의 정신을 곳곳에 남겨 두려고 하니 과거의 인물도 현재에 살아 숨쉬는 것이다.

당대의 사람들이 앞선 인물들을 기리고 그 정신을 후대에 이어주기 위해 글과 사진과 추억으로

영양의 인물들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람들을 초청했다.

 

 

최초의 한글조리서, 디미방의 장계향노마님, 삶을 얘기하다. 

 

 

나를 여중군자라 부르지 말라

여자의 행복은 모름지기 하나이니

남편에게 사랑받고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다.

 

후세인들은 나를 존중한다지만

나는 존중보다는 사랑이 그리웠다

허나 남편과의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짊어졌던 짐이 무거웠고

유학자의 자녀로 또 선비의 아내로 사는 것이 힘들어서

잠시 한탄을 했을 따름이다.

 

 

최초의 한글 요리서 디미방을 지은 이유는

음식으로 고통 받았던 며느리의 아픔을

재령 이씨 며느리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는 병약한 어머니를 모시고

어릴 때부터 요리를 해

출가 전에도 이미 요리 솜씨가 상당하다고들 했다.

 

출가 후 음식 솜씨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고임을 받아

음식을 하면 재미있고 더욱 즐거웠다.

 

 

보통 양반집 가문의 여식들은

당시 출가 할 나이 이팔청춘에

음식하는 법을 제대로 배웠겠는가

 

음식이란 기능에 가까운 면이 있어

몸에 익히고 손에 배야

잘할 수 있는 것임을 모두 다 잘 알고 있음에랴

 

음식 배울 곳이 따로 없고

가르침을 받을 사람이 한정돼 있으니

디미방이 좋은 음식 참고서가 될 것이다.

 

 

친정아버지는 장자 흥자 효자를 쓰는 분으로

조선중기의 대학자였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초야에 파묻혀 후학을 기르는 것을 낙으로 삼으셨다.

 

광풍정이란 정자를 지어

평생 동안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며

수 백 명의 제자들을 길러 내셨다.

 

부친은 여식을 귀애하여

학문을 가르치고 품성을 도야토록 하였으니

나는 시, , 화에 능했다고 할 수 있다.

 

 

후세에는 내가 지은 시 중 9편만 전해진다고 하는데

번암 채문숙 공이 학발시를 보고

시경 삼백편 중 이 만큼 뛰어난 작품이 없다고 하였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학발시

 

흰 머리로 병들어 누웠는데

아들은 만리 밖으로 행역 나가네

만리 밖으로 행역 나가면

어느 달에나 돌아오려나

 

흰 머리로 병들었는데

해는 서산에 가까워졌네.

빨리 오라고 손 모아 하늘에 빌건만

하늘은 말없이 아득키만 해라.

 

흰 머리로 병든 몸 끌어안고

일어났다가는 다시 쓰러지네

지금까지도 이러하니

옷자락 끊던 옛날 아들과 어찌 같던가

 

 

 

이팔 청춘에서 한 살 모자라는 나이에

가난한 이웃집 노파를 병구완하고 지은 시인데

재능보다 집의 딱한 사정이 시심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어린 시절을 회고하니

손이 쉴 틈이 없고

생각은 야생마보다 더 빨리 지나가누나.

 

이왕 한 것

가슴에 품고 있는

자랑스러운 얘기를 좀 더 하고 싶다.

 

 

당대 서예의 대가 정윤목 공이 나의 초서 작품 적벽부를 두고

기풍과 필세가 호기롭고 굵직하여 중국 어느 대가의 글씨 같다고 하였는데

중국의 대가가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독특함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사나운 호랑이의 목젖이 보이게 그린 맹호도는

오미와 형용과 색상을 살피는 음식을 만들면서

길러진 관찰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지아비는 친정아버지의 제자였던 석계 이시명으로

품성이 좋고 학문이 깊어 친정아버지가 좋아하셨는데

나와도 뜻과 마음이 맞아 잘 맞았다.

 

 

다만 슬하에 전처 소생의 두 아이가 있는 홀아비여서

문득 생각하면 여자로서 슬프지 아니했겠냐마는

종부지덕과 익힌 학문으로 본성을 다룰 수 있었다.

 

슬하의 10남매 중 아들 일곱이 모두 벼슬길에 올라 기뻤지만

글 잘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은 선행이어서

착한 행동을 하면 즐거워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녀들에게 말했다.

 

우주의 질서는 함께 사는 것이고 맛이란 서로 다른 것들이 섞여  어우러진 것이며

조화가 잘 된 것이 음식이니

음식에는 우주의 질서가 들어 있는 것이다.

 

 

 

디미방에 기록하였던 음식이야

남들은 호기심 반 기대 반이라지만

무어 별 것 있겠는가?

 

음식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먹을 때 맛있고

배고플 때 먹어야 맛있지 않겠는가?

 

다행이도 종부 조귀분이

두들마을 음식디미방 체험관에서 손맛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를 통해 옛사람들의 맛을 보시게나.

후회는 없을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