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우복 정경세 선생을 만나다.

맛깔 2019. 5. 11. 22:53

열 정승과도 바꾸지 않은 벼슬, 대제학을 지낸

우복 정경세 선생을 만나다.

 

어리석다고 하심은 타협하지 않는 정신이요 바위라고 함은 굳건한 기상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말본새를 보면 성격을 알 수 있고 행동으로는 그의 성품을 알 수 있으며 얼굴에서는 그의 마음이 드러나 있고 글을 보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음이로다.

 


정경세 선생의 호는 우복이다. 어리석게 엎드려 있다는 뜻이다. 대제학을 지내고 문장과 유학이 당대 최고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분이 그럴 리 있겠는가? 대제학은 학문과 도덕이 걸출하고 가문에도 하자가 없어야 되기 때문에 대제학을 배출한 집안은 가문의 영광으로 알았다. 오죽하면 열정승과도 바꾸지 않은 벼슬이 대제학이라고 했을까.

 


우복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저는 대한민국 상주 땅에 살고 있는 후손이올시다

자네가 어떻게 왔는가? 무슨 일이 생겼는가?”

글을 읽다 보니 우복 선생님의 존함을 여러 군데서 발견했습니다. 한결 같이 우복 선생님의 문장과 덕을 칭송하는 글이 많더이다. 직접 만나 뵙고 여쭐 말씀이 많아서 찾아 왔습니다. 글은 시공을 넘나 들 수 있으니까 어떻게 찾아왔는지 궁금해 하지 마시옵소서



어쨌든 고마운 일일세. 나이 들면 좀 외롭지 아니한가? 내가 살던 시대는 장유유서와 남녀유별을 엄격히 따졌지만 요즘이야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스스럼없이 지내니 반가운 일일세

어째서 어리석게 엎드려 있다는 우복 선생이라 하시는지요? 벼슬과 학문을 보면 결코 어리석거나 신분이 낮은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시게. 저 산을 보고 바다라고 한들 바다가 되겠나? 소를 보고 용이라 한들 소가 용이 될 터인가?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인간의 본성도 마찬가지 일터지요. 가려져 있는 본성 말입니다. 본성을 뭐라고 부른들 바뀌지 않을 것 아닙니까?”

잘 아시는군. 게다가 중앙 정치에서 물러 난 사람이 잘난 척 하면 벼슬아치들이 좋아 하겠는가? 아무짝에도 도움 안 되는 좋은 이름 얻고자 소중한 것을 버릴 수 없는 문젤세. 명예를 얻으면 잃는 게 있다네

그래서 또 다른 호가 일묵(침묵이란 뜻)이었군요. 아는 듯 모르는 듯



말 안한 들 모를 리가 없고 말한 들 모르는 게 알아 질 리 있나?”

서애 류성룡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으셨다면서요?”

그 분의 도저한 학문과 인품이 내 삶의 방향을 잡아 주었지

우복 선생님의 공이 하나 둘 아닙니다만, 상주 사람들은 존애원을 우복 선생님과 연결해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활동하던 때는 인물이 많았지. 월간, 창석, 금간, 남계, 일묵재, 북계, 사서 등 이들은 틈만 나면 국리민복하는 길이 없을까 걱정했지

공맹의 도를 배우면 그렇게 되나 봅니다

충과 효가 으뜸이라고 배우니 그렇겠지. 글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글에 좌우되는 이치야. 하여튼 뜻 맞는 선비들과 함께 낙사계를 합계하고 존애원과 도남서원을 건립했지. 임진왜란 후 시절이 하 수상할 때라 민심이 흉흉했어. 민심을 다잡고 나라 재건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지. ‘후손들이 아주 고마워한다더군.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고 기억해주니 우리 선배들이 오히려 고마워할 일이야



우복 선생님의 집을 구경시켜 주십시오

계곡의 정자라는 계정이 좋지. 물소리 잘 들을 수 있는 정자라고 청간정이라 부르지. 여기서 독서를 하고 사색을 했다네. 물소리에 집중하면 정신을 모을 수 있어.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이 물을 좋아한다고 하지. 내가 사랑한 시 계정을 들어보시게

 

시냇물은 맑기가 거울같고

띠집은 좁다란 게 배와 같네.

처음으로 대괴몽(大塊夢)을 돌려

애오라지 작은 절의 중같이 지내네.

밥을 던져 고기 먹는 걸 구경하고

노래 멈추어 해오라기 잠을 기다리네.

가서 삽짝 종일 닫고

홀로 앉았으니 뜻은 유연하네. (상주문화원 자료)



노자의 다툼 없는 물 얘기가 아니라도 물소리를 들으니 번뇌가 사라지는 듯 합니다

그럴테지. 물소리로 공부에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네. 대산루를 보시게. 안산을 마주 본다는 뜻으로 대산루라 이름 지었는데 서실로 애용했어. 백 마디 말보다 대산루를 읊은 짧은 시 한편이 더 마음에 와 닿을 것일세.”

 

성현은 가셨으나 글은 남아 있으니

끝까지 융화한 마음에 이르면 곧 공을 보리라

좋게 이를 향해 부지런히 힘 써야 할 것이니

윤편싫어하고 환공을 비웃지 말라. 주1)

 

글을 보니 세상사에 무심한 듯 하면서 학문하여 일신우일신하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선비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는 마음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정신으로 학문을 해야지. 그렇지 아니한가?”

그것을 알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아직 입문조차도 못했습니다

그렇지 아니할 세. 마음있는 사람이니 발을 내디뎌 보시게. 여기가 내가 사는 산수헌일세. 산수헌이라 함은 내가 산수를 좋아해 그렇게 이름을 붙였어. 요산요수는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들의 낙일세. 내가 쓴 글을 보시게나



 

내가 천석(泉石)을 너무도 좋아하여 이곳에 터 잡아 살면서부터 관동 두 서넛 무리와 함께 기이한 곳을 찾고 승지를 더듬어 아래 위 십여 리 사이의 높은 언덕과 굽은 물굽이를 지나 끊어진 구렁과 깊은 숲까지 발자취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마침내 기꺼이 뜻을 얻어 스스로 말하기를 세상에 어떤 사물로도 나의 이 낙과 바꿀 것이 없다.’ 하고 장차 이로써 종로(終老)의 계획으로 하였다. 2)

 

산과 물을 좋아하여 산수헌 주위를 무수히 돌아다녀 우복이란 이름을 얻고 맑은 물과 기운 찬 산을 발견했다네. ‘우암(愚巖)’ 이란 시를 들어 보세나

 

만고에 부딪치는 물결 혼자 힘으로 무찌르고도

머린 쳐들고 얼굴 추하니 꼭히 어리석은() 듯 하네.

다른 해 손이 있어 내방할 때에는

산 밑의 푸른 바위()가 바로 나인 줄 아시길

 

어떤가?”

하하 우복 선생님의 마음이 와 닿습니다. 저는 우복 선생님의 마음을 이렇게 말하렵니다. '어리석다고 하심은 타협하지 않는 정신이요 바위라고 함은 굳건한 기상'이라고요"

대산루 20경을 보시려나. 대산루, 회원대, 오봉당, 오로대 등 대산루 주변 스무 군데의 절경을 시로 표현한 것이 있어. 바쁘다니 아쉽네만 언제 꼭 한 번 읽어 보시게. 상주문화원에서 발간한 상주의 누정대에 소개 돼 있네. 그럼 두루 여러 사람들에게 안부 전해주시고.”

학문과 산수와 마음 경개를 표현한 글이 좋습니다. 그래서 우복 선생님을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매한 후배가 찾아오면 귀찮아하지 말고 가르침을 주시길 바랍니다.”

호학기재를 찾아 함께 오시게나. 참 나 이후로 성균관의 적통을 이어받은 성균관대학교의 총장이, - 그가 바로 대제학 아니겠나? 상주 사람 김준영 총장이라고 들었네. 참으로 경하할 일일세. 부디 그와 함께 상주의 유학을 다시 돌아봐 주시게나.”



1)춘추시대의 제인으로 수레를 잘 만들었다. 그가 수레를 만들 때 환공이 당상에서 글을 읽자 무슨 글을 읽습니까?’라고 물으니 성인의 말씀이라고 환공이 말하였다. 이에 성인이 계시는지요?’라고 되물으니 안 계신다.’라는 답에 그러면 글은 성인의 껍데기 혼이 아닙니까?’라고 했다. 윤편은 정신의 요체는 글에 있지 아니하지만 전할 방법이 없어 글로써 나타냈을 따름이어서 글은 껍데기 혼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는 마치 노자 도덕경의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라고 한 공자의 말씀을 연상시킨다. ‘언어가 뜻을 온전하게 전할 수 없다.’는 생각은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다.

2)노년을 마칠 때 까지    

 

: 하춘도

(출처 : 감빛고을 상주여행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