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사람들의 한우물 인생

비단 아씨의 베틀 노래

맛깔 2011. 8. 30. 04:47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한 잠 자고 일어난 누에 하루도 열두 밥을

밤낮을 쉬지 말고 부지런히 먹이리라.

뽕 따는 아이들아 뒷날을 생각하여

고목 가지는 꺾어 내고 햇잎은 놔두고 따소. - 농가월령가 4월령 - ‘늘뫼’ 역  

 

 

삼백의 고장, 상주에는 세 가지 흰 것이 있는데 쌀과 (분 나온) 곶감 그리고 (생사의 원료가 되는) 누에(고치)다.

누에서 나온 생사로 짠 것이 비단과 명주다. 비단과 명주는 고급의류의 재료로 쓰이는데 명주는 고급

수의로도 사용된다. 

 

백련곱단이는 상주시 이안면에서 몇 대를 이어 오면서 가내수공업으로 명주를 짜고 있는 명주 공장이다.

문경 영순면 왕태리에 살던 고영순(61세)님은 1972년, 논농사, 봄배추, 누에 먹이고 명주 짜던 상주시 이안면의

이맹호 님(전 상주시의원)에게 시집을 왔다. 그는 시집 온 이후로 지금까지, 울적하면 베틀노래를 부르고

즐거우면 농가월령가를 읇조리며 명주를 짰다.

 

 

시댁에는 시할머니, 시어른, 시누이 등 모두 3대가 살았는데 곧 아이가 태어나 4대가 10년을 함께 살았다.

성주 이씨 7대 종부로 년에 제사 11번, 시어른 생신과 설, 추석 등 모두 16번의 행사를 치렀다.

그러는 틈틈이 명주를 짰다.  

 

 

베틀을 놓세 베틀을 놓세 옥난간에다 베틀을 놓세

에헤요 베 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에 수심만 지누나 - 김영임의 베틀가 -

 

원래 명주는 이안이 생산의 원조였는데 전기가 들어오고 동력베틀이 보급되면서 전기가 먼저 들어 온

함창이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베틀은 손, 발, 손과 발 그리고 동력을 사용하는 베틀로 발전되었는데,

목 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이안 사는 임박사와 만물박사라는 칭호를 가진 두 사람에 의해 베틀이 급속도로

발전했다고. 옛날 함창, 이안의 집들은 거의 명주를 짰었는데 이제 그 수는 열 다섯 가구 정도로 줄어들었고

명주를 짜는 노인들 중 60대 이상은 없고 고영순 님이 최고령 베틀아씨다. 

 

 

잠실은 누에를 치는 방으로 서울의 잠실은 원래 누에를 먹이던 곳이다. 누에가 지명에 들어갈 정도였으니

잠실의 크기와 누에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중요성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백련곱단이 공장 앞뜰에

뽕나무가 있어 누에 8장을 한 8년 정도 먹인 적이 있었다. 보통 1장을 먹이면 누에고치가 15말 정도 나왔다.

누에는 뽕나무 잎 밖에 먹지 않고 농약이나 기름 등 이물질이 묻은 뽕잎을 먹으면 죽을 정도로 키우기가

대단히 까다롭다.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는 소리는 2002년 환경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에 들어가 있는데

조그만 미물이 뽕잎을 갉아 먹는 소리가 마치 비오는 소리 같다. 비가 쉼 없이 오듯, 누에도 끊임없이

뽕잎을 먹는다. 그리고 3일 동안 한 잠을 자고 깨어나 뽕잎을 먹고 또 한 잠을 자고, 그렇게 해서

넉 잠을 자고 누에고치를 짓는다. 누에가 끊임없이 뽕잎을 먹으니 누에를 키우는 사람들은 뽕잎을

따다 갖다 주고 누에똥을 치우느라 식구들이 모두 이 일에 매달려도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누에가 고치를 만들면 함창, 이안과 가까운 문경시청 앞에 있는 누에공판장에 갖다 팔거나 그곳에서

누에를 구입해와 물레를 자아 실을 빼고 명주를 짰다. 명주가 돈이 되고 누에고치가 좋은 돈벌이가

될 때는 상인들이 집집을 방문하여 선금을 주고 구입하였지만 지금은 생산하는 사람들이 고정

거래처하고만 거래를 트고 있다. 고영순 님이 시집 왔을 때, 동력베틀이 한 대 있었다.

 

이 베틀을 시누이와 함께 둘이 번갈아 한 밤을 새며 5일 함창 장에 내다 팔기 위해 80자짜리

명주 한 구부를 16필이나 짰다. 고영순 님은 23살 새댁부터 43살까지 한 대의 베틀로 시조모,

시어른 공양하고 1남 2녀를 공부시켰다. 

 

 

긴 병 끝에 효자 없다고 하지만 고영순 씨는 시어른 공양에 효부였다. 시조모, 두 시어른 들이 풍을 맞고

자리보전한 것을 20여년 넘게 수발하여 남편은 아내의 공덕을 제일로 치고 아내를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려고 한다. 고영순 님은 지나간 일이라 얘기할 수 있지만 앞으로 닥칠 일이라면 할 자신이 없다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효부의 심성이 어디 가겠으며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 하늘의 법도다.

 자식들이 부모 하는 양을 보고 배우니 효자 집안에서 효자 난다.

 

정성은 하늘도 감동시킨다. 시어른이 풍을 맞아 13개월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었는데

부부는 어른을 낫게 하기 위해 병원, 침, 한약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이게 왠일인가? 식물인간 된지,

13개월 만에 어른이 의식을 회복했다. 시어른은 한 쪽 다리가 마비된 채 지팡이 짚고 다니며 20여년을

더 사시다가 별세하셨다.  

 

 

고영순 님은 44살 무렵, 베틀 6대를 더 들여 7대의 베틀로 지금까지 명주를 짜고 있다. 대기업에서는

누에 생사를 원료로 건식 방식으로 직조하여 윤이 나는 비단을 짜고 가정 등 소기업에서는 수식 방식으로

명주를 짜기 때문에 가내수공업 형태의 명주 짜기도 경쟁력이 있다. 요즘은 명주 필을 잿물에 익히고

천연 염색을 해 다양한 색상과 무늬의 명주가 생산되고, 천연재료 명주가 건강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로부터 명주 찾는 수요가 점차 늘어난다고 한다.

 

도토마리 비는 양은 / 소박하다 다신어미 / 등을 치는 형용이요

햇대 톡톡 치는 양은 / 우리조선 신천할 때 / 화살뽑는 형용이요

버금이라 뛰는 양은 / 친상이라 옥황상제 / 못논애기 허리 가는 시늉이요. - 베틀가 -

 

누에가 뽕잎 갉아 먹는 소리    http://www.metro.seoul.kr/kor2000/sori/5/life_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