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난 것 맛난 집

아빠가 하는 요리, 야채죽

맛깔 2012. 12. 2. 18:36

죽은 일반적으로 기능성 음식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병치레 후 회복을 위해 죽을 먹거나 악귀를 쫒아 내기 위해 먹는 팥죽이 그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고행으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자 수자타’라는 여인이 바친 우유죽을 드시고 기력을 회복하셨다. 동지에는 팥죽을 쒀 먹는데 양의 기운을 띤 붉은 팥은 역귀를 쫒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하느님이 모세의 간청을 들어 양의 피를 바른 백성들 집의 장자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발상과 비슷하려나.

 

                            맛깔표 야채죽

 

죽과 관련된 속담을 역발상해 보면 재미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어 비실한다.’는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 과도한 영양이 있는 음식을 주면 소화하지 못하니 건강상태에 맞는 음식을 주도록 하라는 뜻이 아닐지. ‘죽 쒀 개 준다.’는 맛있는 줄 알고 죽을 쑤었는데 맛이 없어 개에게 준다. ‘죽 떠먹은 자리’는 죽은 먹어도 표가 잘 나지 않으니 먹는 사람을 위해 정성으로 죽을 다뤄야 한다. ‘죽도 밥도 안됐다.’는 정성을 드리지 않으면 이것저것도 되지 않으니 일을 할 때는 정성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닐지.

 

 

죽은 끓이지 않고 ‘쑨다’고 한다. 죽 외에도 쑤는 것은 많다. 불과 2-30십년 전만 해도 방벽에 신문지 도배를 하기 위해 풀을 쑤고 소에게 여물을 줄 때도 여물을 쑤었고 한 해의 갈무리를 위해서는 메주를 쑤었다.

 

객지 나가 있는 쌍둥이 딸이 기차타고 집에 오는 길이라고 문자가 왔다.  

 

맛깔 : 뭐 먹고 싶냐?

큰딸 : 안 바빠? 해줄 수 있어?

맛깔 : 당근. 말만 하슈.

 

큰딸은 뜸을 들이다 야채죽과 계란비빔밥을 말하고 철없는 막내는 청국장, 고등어 조림이라고 숨도 안 쉬고 얘기한다.

 

허걱 큰일이다. 고등어조림은 인터넷으로 조리법을 또 검색해야 한다. 자주 하는 것이 아니어서 할 때마다 검색을 해야 한다. 그래도 맛있냐구요? 당근. 가족들이 맛있다고 하네요.

 

 

요즘 무는 어지간한 배와 사과보다 더 맛있다. 달짝지근한 육즙이 풍부하고 소화에 좋아 ‘무시 빵구 (무 방귀)’라고 무를 먹으면 아래쪽에서 소리가 잘 난다. 가을 무를 넣으면 맛과 건강에 좋다는 얘기다. 

 

두 시간 밖에 안 남았다. 야채죽의 좋은 점은 경상도 사투리로 갱시기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없이 살 때 국수에 각 종 야채를 듬뿍 넣고 쌀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지 하며 끓인 갱시기의 역사가 야채죽에 담겨 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갱시기는 웰빙 음식이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하루 이틀이지 주야 장창 갱시기를 주니 먹는 아이 짜증내고 투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도 가슴이 아파 아이보고 부모도 짜증내고. 굴비 엮이듯 짜증이 집안 곳곳에 엮여 있구나. 지금 생각하면 다 심장 상하는 일이다.

 

 

냉장고에 조금 상한 감자, 새송이 버섯, 당근, 달랑무, 단호박이 있다. 밥통에는 한 공기에 약간 모자라는 현미밥이 뻘쭘하다.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부랴부랴 씻고

 

썩은 부위 도려내고 껍질 벗겨 깍둑썰어

그릇에 올려 보니 모양새는 그럴 듯 하네.

 

아뿔싸 흔한 양파는 왜 빠져 버렸나.

애석한지고

양파는 몸에도 좋지만 맛도 좋은데

맛이 조금 덜하면 양파 탓으로 돌리기로 작정하고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밥을 넣고 볶다가

 

당근, 감자, 달랑무에 참기름 조금 넣고 또 볶고

나머지 단호박, 새송이를 넣고 참기름이 충분히 밸 정도로 볶다가

 

적당량의 물을 넣네.  

 

센 불에서 펄펄 끓이다가

용암 끓듯 죽이 몽글몽글해 지거든

불을 낮추고 서서히 저어준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반찬과 함께 내 놓으면 끝.

 

 

맛이 어땠냐구요? 재료 중에 당근이 있었죠. 얘들이 아빠의 야채죽은 당근 맛있다고 합니다.

 

 

사족

하나 : 야채를 한 끼 분량으로 준비하면 번거로우니 한꺼번에 재료를 많이 준비해 한 끼 분량으로 나눠 보관한다.

둘     : 그릇은 밑바닥이 두툼해야 좋아 옛날에는 무쇠 솥을 사용하다 너무 무거워 5중 통스텐 냄비로

           바꿨는데 대 만족.

셋     : 음식 디스플레이를 잘은 못해도 흉내는 낼 줄 아는데 오늘은 꽝. 몸과 마음이 부실한 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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