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시와 별의 고장, 영월(2)

맛깔 2011. 6. 11. 10:00

 

청령포

내가 거처하던 청령포가 좋겠소. 내가 두 달 동안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했는데 그때 내 슬픈 사연을 보고 들었던 관음송과 처소는 어땠는지도 궁금하오. 내 듣자하니 강호동의 1박 2일에도 나왔다고 하오.

“네, 1박 2일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고 합니다. 그 뒤 영월군은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관광객의 안전과 보다 많은 인원 수송을 위해 배도 새로 건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마는 TV도 보십니까?”

 

 

청령포 입구

 

그렇지 관광객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도 우선 아니오? 참 잘한 일이오. 군왕이든 목민관이든 아님 군수든 백성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오. 참 TV를 말씀이오. 너무 따지지 마오. 군왕은 민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온갖 것을 다한다고만 아시오.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폐하 거처의 소나무들이 몸살을 앓자 소나무 숲에 데크를 깔았는데 보기는 그래도 효과는 좋다고 합니다. 신도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듣는 풍월이 있어 아는 것이 많다고 하옵니다.”

 

 

관음송

 

하하 과인이나 경도 남다른 노력을 하는구려. 그래서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고 음속에 양이 있고 양속이 음이 있다고 하는 것 같소이다.

“거처를 물끄러미 보고 계신데 당시와 비교해 어떠신지요?”

(단종임금은 거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이시다 아무 말없이 관음송으로 가신다. 당황한 김삿갓이 부리나케 달려 나간다.)

유명이 다른 사람들이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듯 해 유구무언 하는 것이 좋겠소. 잘하면 잘 한대로 못하면 못 한대로 말이 날 것을 경계하여 그리 하니 이해하시오. 혹, 관음송을 아시오?

 

 

단종처소

 

“마마의 외로움을 보고 들었다고 해 관음송이라 불린다지요?”

짐이 있을 때 조그맣던 나무가 벌써 저렇게 컸구려. 수령이 600살이 넘는다지. 내가 힘이 들 때 이 소나무에 기대 많이 울었다오.

“마마, 송구스럽사옵니다.”

 

관음송에서 올라가면 냐지막하지만 강에서는 높이가 80미터나 되는 노산대가 있다오. 해 질 무렵이면 노산대에서 한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시름에 잠겼었지. 무엇보다도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은 정순왕후 송 씨였다오. 지체 높은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돼 노산군 부인으로 민가에 쫓겨나서 후사없이 홀로 사는 정순왕후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어.

 

우리는 사춘기 무렵의 왕과 왕비여서 아껴주는 마음이 남달랐어요. 과인이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에도 오래도록 외로워할 정순왕후가 뇌리에 남았었어. 삶과 죽음이란 구중궁궐 왕이나 여염집 사람들이니 똑같이 느끼는 것이겠지. 오히려 만인지상의 왕들이 느끼는 고독은 더 클 수도 있는 법일 것이야. 그래서 왕은 이 만인지상의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학문과 수양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던 거지.

 

 

글 : 하춘도, 사진 : 강석환

월간중앙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