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김 준영 성균관대학교 총장의 상주 사벌의 꽃사밭 기억 (3-2)

맛깔 2014. 9. 29. 10:59

호미도 날히언 마라난 낟가티 들리도 업스니이다.’라는 사모곡의 한 구절처럼 아무래도 아버지와 함께 한 기억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왜 요새는 원두막이 잘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물장구를 치고 원두막에 올라 수박을 쪼개고

토마토를 어썩 한 입 베물면 여름 더위는 물러갔다. 그 수박과 토마토는 우리 집 것이 아니고 함께 놀던 친구 집 것도 아닌

누구 네의 것일 때가 많았다. 벼를 수확할 무렵 어머니는 원두막 주인인 이웃집을 찾아 아들이 먹었던 과일 값으로 쌀을 전해 주셨다.

 

김준영 총장 사벌국민학교 졸업 사진

(아명 : 김경연)

 

 

내가 어린 시절에는 자연이 놀이터였다. 논은 벼가 자랄 때만 빼고 우리에게 댓문밖 운동장이었다. 돼지 오줌보로 만든 축구공의 축구장이기도

하고 겨울에는 썰매장이 되기도 했는데 벼가 누렇게 익을 때 별식이 되어 준 메뚜기 반찬의 공급처이기도 했다. 가뭄 때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맞두레질을 해 어깨가 아프다고 하면 어머니께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주물러 주셨다.

책거리를 아시는지? 1934년 개교한 사벌초등학교는 학년에 3개 반이 있었는데 한 학년에 60~7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해 전교생은

천 여 명이 약간 넘었다. 학기가 끝나면 전교생이 모여 토끼몰이를 하였다. 전교생이 학교 뒷산을 에워싸고 산 정상으로 올라가면

쫓기던 토끼는 산 정상에서 다시 내려오다 잡힌다. 이렇게 잡힌 토끼는 대략 10~15마리 정도 되는데 이것이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의 책거리였다. 아마 그 날 저녁에 선생님들은 책거리를 하시면서 모범생, 우수생, 효도학생 등을 얘기하며 학생들의

미래를 점치지 않았을까? 제가 대학에 몸담으리라고 생각하셨던 선생님이 계셨을까?

 

고향을 자랑하지 아니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내 고향 상주는 자연재해가 없고 땅이 넓어 오곡백과가 풍성하여 인심이 좋고 그

로 인해 마음이 여유로운 고장이다. 상주는 토질이 좋아 대통령상을 받을 정도로 미질이 뛰어난 쌀의 고장이다. 상주 곶감은

우리나라 최고 명품이다. 이 고장의 블루베리, 포도, 오이와 배도 전국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의 품질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한우를 얼마나 많이 키우는지 전국에서 한우 사육 두수로는 상주가 1위란다. 작년 성균관대 교직원 400여 명이

문경과 상주에서 한마음행사를 마치고 상주에서 한우를 먹었는데 직원들 모두가 그 맛에 감탄하였다. 고소하고도

질기지 아니한 상주 한우에 반한 직원들은 요즘도 상주 한우를 말하며 입맛을 다신다.

이 중환의 택리지에서 상주에는 부유한 자가 많고 또 이름 난 선비와 높은 벼슬을 지닌 사람도 많다.’우복 정경세와

창석 이준이 이 고을 사람이며 소재 노수신과 여헌 정현광의 고향 또한 상주라 했다. 상주 한 고을에서 나는 쌀 생산량이

강원도 총 생산량의 거의 절반에 가까우니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얘기를 떠 올리면 상주 사람의 인심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곳간 인심덕에 아옹다옹 다툼이 별로 없는데 이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옛 어른은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여기에 있다.’고 했는데 경주, 상주, 선산, 안동 사람들은 여기를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고 모두 자기 고장 이름을 댄다. 상주에는 유학과 관련해 큰 인물이 많다. 퇴계 이황은 이곳에서 벼슬을 하며

 제자를 기르신 분이고 소제 노수신, 우복 정경세가 이 고을 사람이다. 도남서원에는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류성룡, 정경세, 이준 등 유학자 아홉 분을 배향하고 있는데, 이만하면 유학의 본향이라고 할 만 하지 않은가? 이런 연유로

상주 사람들은 스스로 양반의 후예라고 자부하여 사소한 다툼에 몸을 던지지 아니하므로 평화롭게 살고 있을 것이다.

 

김준영 총장 모교 사벌초등학교